중선이 쓴 글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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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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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HOW TO STUDY
학습 불변의 법칙 22
우연(RANDOM)에 대해
니체, 그 이후
사춘기(?)
사랑스런 작품들

유자차

"그때는 좋았었잖아 지금은 뭐가 또 달라졌지? 이 차를 다 마시고 봄날으로 가자..." (유자차 / 브로콜리 너마저)

유자차는 들으면 들을수록 너무나 슬픈 노래인 것 같아요. 어떨 때는 자살을 암시하는 곡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섬뜩하기도 해요.

2012. 10. 2.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Metempsychosis #11 - Kate Moss

그희는 스스로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지 못했다.

(2016. 8. 7.)

** 이 글은 1974년생 영국 국적 모델인 Kate Moss와는 관계 없습니다.

Metempsychosis #10 - If you find yourself caught in ...

그 동안 그희가 실수한 건 이루 셀 수 없을 것이다. 단순한 실수부터 다른 사람에게 상처준 것들까지... 하지만 그 사람이라면... 그희의 모든 죄마저 용서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압도적으로.

(2011. 6. 1.)

Metempsychosis #9

"네가 미워했던 만큼 멀리 날아갈거야. 네가 아파했던 만큼 다시 꿈을 꿀거야. 너의 마음속의 어둠만큼 빛이 날거야." (변두리 소년, 소녀 / 브로콜리 너마저)

아름다워지고 싶은 그희의 소망. 할 수 있는 한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꼭 아름다워질거야.

그희가 생각해 낸 것 가운데 하나는 안경을 쓰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도수가 없는 가짜 안경을 쓰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스스로 용납할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희는 스스로 시력을 떨어뜨리기로 마음먹었다.

너무나도 환상적인 조화. 안경과 함께 그희의 미는 완성되었다. 그러나 그희는 시력을 너무 잃어버린 나머지 자신의 아름다움조차 느낄 수 없었다.

(2011. 1. 20.)

Metempsychosis #8 - Fox Die

"첫 눈에 기다려왔던 사람인 걸 알았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소년에게서 태양의 냄새가 났다." (네가 세상을 부수고 싶다면 / 후지와라 카오루)

늘 세상을 비웃으며 살아가던 그희는 몹시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건만, 파멸이 뻔히 보이는 무기에 고스란히 노출되었기 때문이었다.

Fox Die. 특정 DNA만을 마비시켜 망가뜨린다는 것이 메탈기어 솔리드 같은 게임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니!

(TBA)

(2010. 12. 14.)

Metempsychosis #7

이 일이 도대체 몇 번째인가. 그희는 또다시 엎드려 울었다.

"everything I touch turns to stone" (blow out / RADIOHEAD)

분명히 내가 결정지을 수 있을 것인데... 왜? 왜? 몇 만 번이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는데도, 그의 마음은 달라지지 않는 걸까?

결국 그희의 집념은 이 모든 것을 이겨냈다. 마침에 그희와 그의 사랑은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는 그희에 대한 사랑의 노예가 되어 쩔쩔맸으며, 그희 없이 하루도 살 수 없다고 믿게 되어, 모든 생각이 그희로 꽉 차버렸다.

어떻게?

수천 번의 시도 끝에 그희가 알아낸 답은, 바로 그를 사랑하지 않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때는 좋았었잖아 지금은 뭐가 또 달라졌지" (유자차 / 브로콜리 너마저)

(2010. 6. 1., 8. 7., 8. 28.)

Metempsychosis #6

그희 역시도 어차피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신적인 힘 앞에, 그희는 한낱 인간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하지만 그럴 걸 알면서도 도망갈 수 없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므로.

73.78은 그희가 추구할 수 있는 극한의 점수였다. 그러나 그 기쁨은 5분도 유지되지 못하였다. 이것이 인생.

"I've got a feeling the weather is changing and my luck is in" (Hiding 'neath my umbrella / God Help The Girl)

그렇지만 그희만이 억울한 것인까? (n+1) 세상에서 그희는 신으로 추앙받고 있었으며, 그희를 뛰어넘지 못한 수많은 '인간'들은 (n) 세상의 그희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신'을 저주하고 있었다.

인생의 99.99%에 해당하는 양상에 대하여...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를 기억하며 / 중선

(2010. 3. 2.)

Metempsychosis #5

미래를 본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그희는 그런 일 따윈 절대 불가능하다고 믿었다. 나름대로 그희가 살고 있는 국가 최고의 대학교에서 공학 교육을 받았는데 어찌 그런 게 가능하다고 믿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 남자를 만나고 나서 그희는 조금 흔들리고 있었다. 조금씩 조금씩...

"길었던 하루가 다 지나도 뭘 했는지도 모르겠어" (속좁은 여학생 / 브로콜리 너마저)

마침내 그 남자는 그희가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던 예지 능력을 발현시키는 데 성공하였고 그희는 드디어 미래를 보기 시작하였다.

그희가 본 미래에서 그희는 드디어 미래를 보기 시작하였다.
그 미래에서 그희는 드디어 미래를 보기 시작하였다.
그 미래에서 그희는 드디어 미래를 보기 시작하였다.
그 미래에서 그희는 드디어 미래를 보기 시작하였다.
그 미래에서 그희는 드디어 미래를 보기 시작하였다.
그 미래에서 그희는 드디어 미래를 보기 시작하였다.
그 미래에서 그희는 드디어 미래를 보기 시작하였다.
그 미래에서 그희는 드디어 미래를 보기 시작하였다.
...

- 예지 능력이라는 것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지만 그와 동시에 negative feedback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 중선

(2010. 2. 5.)

Metempsychosis #4

그희는 생각했다: "어차피 망가져버릴 거라면, 아예 부서져버리는 것이 나아. 만약 그의 눈빛에 조금이라도 식은 애정이 느껴진다면, 이 따위 관계... 내가 먼저 부숴버리겠어."

그 역시 생각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만약 그희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배신의 기미가 보인다면 내가 먼저 그희를 버리겠어."

서로에 대한 사랑보다도 먼저 버림당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두 사람.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버릴 생각을 하는 것이 묘하게 균형을 이루어, 둘은 아직까지도 교제 관계를 파기하지 못하고 있었다. 결별이 공식적으로 선언되려면 어느 한 쪽에서 선언을 해야 하는데, 그의 변심을 위해서는 그희의 변심이 필요했고, 그희의 변심을 위해서는 그의 변심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둘은 영원히 함께할 수 있을까? 함께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Deadlock에 빠진 프로세스(Process)는 결코 수행될 수 없다는 건 상식 아니던가?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절대(absolute) 안정과도 같아보이던 둘의 관계는 정말이지 둘의 의지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사소한 사건 때문에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결국 이별에 다다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둘 가운데 누가 먼저 결별 선언을 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둘 가운데 하나가 먼저 이별을 선언해버렸다. Negative Feedback 따윈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TBA)

(2010. 1. 31.)

Metempsychosis #3

나는 말했다: "당신이 행복해질 수 있는 그 시점에 옆엔 내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걸 난 알아"

그렇지만 그희라고 해서 미래를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래봤자 만나면 정만 남을뿐... 그 다음은? 나에게 가장 네가 필요할 때 네가 없을 걸 난 알고 있으니까..."

분명히 나도 미래를 보았다. 하지만 그희 역시 미래를 보았다. 내 미래 속에서 그희는 분명 함께 있었지만, 그희의 미래 속에선 그희를 최고로 불행하게 만든 것이 바로 나였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얘기했다: "그렇다고 한 번 해보지도 않고 포기할 거니? 아무것도 안 해보고??"

아무리 구걸해본다 한들, 그희는 마음을 바꿀 생각이 없었다. 너무나도 확실한 미래였기 때문이었다. '미래라는 건 분명히 너와 나에게 같은 시간일 텐데, 어떻게 그것이 이처럼 창과 방패(모순)처럼 안 맞을 수가 있겠어?' 이런 생각 정도는 그희도 충분히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다시 돌아 갈 순 없어' 아무런 표정도 없이 이런 말하는 그런 내가 잔인한가요?" (앵콜요청금지 / 브로콜리 너마저)

그러나 이 순간 이미 세 가지의 미래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었으니... 나의 세상에서 그희는 나와 함께 그 누구보다 행복한 인생을 누리고 있었고, 그희의 세상에서 그희는 나에게 배신당한 나머지 그 누구보다 불행해져 인생을 저주하고 있었으며, 마지막으로 그희와 나의 세상에서 우리는 서로의 미래가 다르다는 걸 발견하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2009. 12. 21. ~ 2010. 1. 26. Good bye, RIGHT LOVE. / 중선

(2010. 1. 26.)

Metempsychosis #2

'지금 내 목에는 부드럽게 천이 감싸여 있지만 이 부드러움이 곧 내 목을 조르리라.'

이 순간 그희의 눈은 텅 비어있다.

"You are in two minds, tossing a coin to decide whether you should ..." (Lazy Line Painter Jane / Belle and Sebastian)

지금은 누구나 동경하는 톱스타지만, 그희는 과거에 여학생1이었고, 은행원1이었고, 미용사1이었다. 언젠가는 행인1로, 다른 순간에는 노래방 아가씨1로 등장하기도 했다.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고, 그렇게 일 년이 지나고, 1024년이 지나고..., 마침내 32767번째 삶에서 그희는 톱스타가 되었지만, 불행히도 그희는 이 지긋지긋한 삶이 1073741824^1073741824번보다도 훨씬 많이 반복될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버렸다. 그렇다면 지금 톱스타라는 사실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억울하다! 차라리 이 깨달음을 바로 다음 삶에서 줄 것이지... 하지만 내가 원하지 않던 윤회의 굴레에서 단 한 번이라도 내 스스로 n번째 삶을 끊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리라!

"두려워 하는 건 반드시 찾아와" (나를 잊었나요 / 언니네 이발관)

그희의 깨달음은 마침내 그희가 자신을 지탱하고 있던 의자를 걷어차도록 만들었고, 아까의 부드러운 감촉은 어떠한 독사의 독보다 강한 독이 되어 그희의 숨을 조여왔다. 1초? 1분? 1시간?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걸까? 드디어 이러한 것조차 못 느끼게 되었으니 나는 마침내 자유를 얻은 것일까?

......

'지금 내 목에는 부드럽게 천이 감싸여 있지만 이 부드러움이 곧 내 목을 조르리라.'

이 순간 그희의 눈은 텅 비어있다.

나는 지금 3141592358번째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난 드디어 예전에 32727번째 삶에서의 기억을 되찾는 삶을 살 수 있었다. 부디 이것으로 끝이길! 머릿속이 희미해진다.

......

'지금 내 목에는 부드럽게 천이 감싸여 있지만 이 부드러움이 곧 내 목을 조르리라.'

이 순간......

- 2008년 10월초, L과의 통화 도중 든 생각을 따오다 / 중선

(2008. 10. 5.)

Metempsychosis #1

그희가 분한 듯 입술을 파르르 떤다.

'너가 이럴 수 있어? 세상 끝까지라도 쫓아갈 각오는 되어 있으니까!'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그 사람. 그는 이제 더 이상 그희의 곁에 없다.

다행히도 그희는 알고 있다. 이제 자신이 옥상에서 몸을 던지고 나면 잠시 끔찍한 고통이 찾아오겠지만, 그 순간이 지나면 윤회에 의해 새로운 삶을 살리라는 것을.

"슬픔을 멀리 하려고 거짓으로 울고 있네요. 괜찮다 말을 하면서도 눈에는 눈물이 고여..." (표정 / 언니네 이발관 [꿈의 팝송])

'1024번이고 1048576번이고 다시 태어나 주리라. 내 너를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걱정할 것 없어. 어차피 무한하게 다시 태어나는 것이라면 언젠가는, 분명히 한 번은 너를 만나게 될 테니까.'

하지만 여기에는 사소한 기술적인 문제가 있었다. 물론 그희의 윤회는 무한 반복될 것이다. 그렇더라도 그 수는 countable 했던 반면에 모든 윤회의 수는 uncountable 했던 것이었다.

- 2007년 가을 마지막 무렵 꿈 속에 나왔던 장면을 다시 한 번 인용하다 / 중선

(2008. 9. 19.)

HOUSE - I feel hurt.

HOUSE : I feel hurt.
CUDDY : I know.
CUDDY : I'm sorry.

コ-ドギアス #5 - 냉철, 비정

"그래, 내가 틀렸어. 동정에 의지하려 한 게 잘못이야. 냉철, 비정, 스스로를 완전한 상태에 두지 않으면..."

(2009. 11. 9.)

コ-ドギアス #4 - "승리하는 적 앞에서..."

일본은 제국의 속령이 되었고 자유와 권리 그리고 이름을 빼앗겼다. 에리어11. 그 숫자가 패전국 일본의 새로운 이름이었다.

"나는.. 스자크, 난.. 브리타니아를 박살내겠어" (코드기어스 반역의 루루슈 1화 도입부)

M_산성이 지어지기도 하고 초등학생들이 치러야 할 일제고사를 치르지 못하게 한 교사는 해임되고 소득세율은 낮아지고 (이건 supply economics 측면에서 진행된 것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어느 날 갑자기 역사 교과서가 바뀌고 쿠데타는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 되었다.

이러한 것이 바로 패배의 결과.

"승리하는 적 앞에서 죽은 자도 무사하지 못하리라." / 발터 벤야민

(2008. 12. 19.)

コ-ドギアス #3 - Lost in Translation

서양인에게는 머나먼 이국(?)일 수밖에 없는 일본. 주위엔 온통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들밖에 없고 여자 주인공(스칼렛 요한슨)과 남자 주인공이 외로움 속에서 서로를 위로하며 택시를 타고 간다. 그리고 흐르는 my bloody valentine의 'sometimes'...

"Close my eyes, feel me high..."

마치 규화보전을 계속 익힌 것처럼 내 속의 뭔가가 끊임없이 변해 버렸고, 따라서 점점 외로워져만 간다.

루루슈가 얻은 왕의 힘 '기어스' 역시도. 결국 자기 자신을 고독하게 만들 뿐.

그렇지만 여기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2008. 10. 3.)

コ-ドギアス #2 - 완다와 거상 - 마이더스

누구든 내가 내린 명령을 따르게 된다는 왕의 힘 기어스. "이 힘을 가진 자는 결국 고독해진다"던데...

마이더스가 손대는 것마다 금으로 변해가며, 그토록 사랑하던 자신의 딸마저 황금으로 만들고나서야 마이더스는 비로소 후회한다. 코드 기어스의 모티브는 분명 마이더스 이야기에서 따왔을 것이다.

"Everything I touched turns to stone..." (blow out / RADIOHEAD)

왕의 힘까지 얻지도 못했지만, 어떻게 해서든 그희를 살리기 위해 애쓴 완다. 완다의 몸이 점점 침식당하며 악마가 되어 가듯 루루슈 역시 주위의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간다. 더 이상은 아무도 보내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그렇지만 루루슈의 얘기처럼 "이제 여기서 더 이상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그런 이유가 있다는 것 자체가 바로 '비극의 시작'인 것이다.

"This is beginning to hurt, this is beginning to be serious" (getchoo / weezer)

살아 있다고 하는 자신의 딸을 어떻게든 만나기 위해 외딴 산속에서 숙박업을 하는 척 하며 독을 이용해 손님을 죽이고 재물을 모으던 어머니가 결국은 자기 딸에게마저 독을 먹이게 되듯. 하지만 그 어머니가 할 수 있는 선택이란 별 다를 게 있었을까? 단지 비극이었을 뿐.

(2008. 9. 29.)

コ-ドギアス #1

(to be written)

...
1. 이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욕하면서도 주말 드라마나 일일 드라마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아줌마들의 심정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2008. 9. 23.)

"그런 날이 있어"

"내 생각에 어쨌든 책을 읽으려면 우리를 물어뜯거나 찌르는, 오로지 그런 책들만을 골라 읽어야" 한다. (/ 프란츠 카프카)

브로콜리 너마저의 노래말을 만든 사람(아마도 덕원)은 도대체 어떤 아픔을 겪었던 것일까? 정말 너와 오래 하고 싶었는데 자꾸 발을 밟고, 그러면서도 계속 마음이 바빠지고, 그러다 결국 그 사람을 보내고 안녕을 말하지만, 아직도 마음 속 한 구석에 "석탄이 된 고사리"처럼, "빙하기에 남은 공룡 발자국"처럼 그 기억을 잊지 않으면서 어쨌거나 지금 부르는 노래가, 보편적인 노래가 그 사람에게도 전해졌으면 좋겠으니 말이다.

권교정의 작품 '헬무트'에서 자신이 너무도 사랑했던 이를 보내면서 너무나 막막해 그냥 "마음을 놓아버린" 굴라스처럼 기억을 잃어버린 나에게,,, 내 기억 속에 있던, 내가 좋아하고 사랑했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너무도 강렬하게 되살려 버린다.

그렇게, 그래서, 그 때문에, 가슴이 시려 온다...

"브로콜리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분명 마음이 따뜻한 사람일 것이다" (/ 내 친구 승원)

그래서, 적어도 나와 만나는 사람은,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든 사람들은 다른 건 몰라도 '브로콜리 너마저' 하나만큼은 꼭 나와 함께 좋아했으면 좋겠다. 이번 공연을 보고 나서... 그런 답을 얻었다.

- 어제는 기적의 소년, 오늘은 30대 중년...이 되어버린 팬 :'(

(2011. 6. 19.)

동키콩

1989년이었나? 1990년이었나? 중학생이었던 내 누나는 초등학생이었던 나와 나름 엄청난 계획을 세웠다. 당분간 돈을 모아서 문구점에 있던 멋진 기계식 게임기를 사기로 한 것. 이제 와선 그때 사고 싶었던 게 뭐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어쨌거나 심부름값 등으로 100원, 50원씩 모아 1,000원이 넘게 모으는데 성공! 마침내 토요일에 누나와 함께 뿌듯한 마음으로 문구점에 갔다.

하지만... 두둥!

우리가 갖고 싶었던 게임기는 이미 팔리고 없었다. 다른 것들은 가격이 너무 비싸서 사올 수 없는 것들 뿐이었다. 나는 왠지 뾰루퉁해져 집에 돌아왔고, 어쩐지 스스로 슬퍼져서 힘이 빠진 채로 잠들었던 것 같다.

한참 자다가 누나와 엄마가 옆에서 깨우는 소리에 일어났는데, 누나가 약간의 돈을 더 보태서 사온 야구 게임기가 ... (엄마 돈이었던가? 또는 누나의 비상금이었을까?) 내 눈앞에 보이는 것이었다.

약간 경사가 있는 그라운드에서 투수 버튼(?)으로 작은 모양의 공을 흘리면, 회전식 방망이가 그라운드 홈 부근에 있어서 타자 버튼으로 배팅을 하는 식이었다. 그러면 공이 방망이에 맞아 날아가고 맞은 각도라든가 위치에 따라 홈런/2루타/안타 등이 결정되어 나름 재밌었던 게임으로 기억한다.

못 사온 게임기에 대한 아쉬움은 그렇게 잊혀져 갔다.

(그 게임기가 동키콩인 건 아니다.^^)

(2010. 9. 9.)

꽃이 너무 일찍 꺾인다

대학교 입시만 놓고 봤을 때 중학교 과정까지 사교육은 전혀 불필요하다. 사교육뿐만 아니라 그렇게까지 공부를 잘 할 필요도 없다. 정말 기초적인 것만 조금 알아도, 아니 아예 백지 상태여도 좋다. 고등학교 들어가서 3년만 열심히 해도 된다. 단 3년이면 다 따라갈 수 있다. 약간만 더 기초적인 걸 알고 있다면? 1년이면 된다. 대입수학능력시험은 그런 체제다. 지금 무슨 노벨상을 받아오라고 하는 게 아니지 않는가?

하지만 꽃이 너무 일찍 꺾여버리는 게 문제다.

정말 재능이 있는데, 잘할 수 있는데. 단 3년이면 족하다는 것을 모르는 평범한(= 극히 해로운) 사람들에 의해 소중한 꽃이 너무 일찍 꺾여버린다는 것이다.

(2010. 2. 25.)

자신에게 솔직할 것

여러 가지를 얘기하고자 한다.

학습량을 정할 때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만 정해야 한다. 공부하는 데에 취미가 영 없는데 갑자기 하루에 네다섯 시간씩 공부하겠다고 마음먹었다고 치자. 당장 그 시간에 '충실하게' 공부할 수 있을까? 하지만 하루에 단 30분씩이라도 자신의 모든 집중력을 다 바쳐 꾸준히 공부하기 시작했다면 어떨까?

하루에 공부를 하면서 얼마나 집중할 수 있을까? 딱 그 시간만 공부한다고 생각하고, 나머지는 노는 시간으로 생각하자.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이 공부할 수 있을 정도의 시간만 공부하라는 얘기다.

또한 지금 책상앞에 놓인 교재들, 책장에 쌓인 교재들을 보라. 부담스럽게 쌓인 교재들은 오히려 의욕을 떨어뜨린다. 솔직하게 자신을 인정하고 할 수 있는 만큼만 둬라. 나머지는 버려라. (창고에 잠시 치워두든지.)

한편 개별 과목을 공부하는 면에서도 자신에게 솔직해야 한다. 자신이 마음 속에서 '동의'할 수 없는데 단기적으로 외우고 넘어가는 것은 장기적으로 독이 될 수밖에 없다. '암기'에 의존하는 것은 멸망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2007. 8. 25.)

공부가 좋아지는 가장 좋은 방법

그건 바로 너무너무나 공부하고 싶어질 때까지 절대 공부하지 않는 것이다.

(2006. 3. 3.)

대가한테서 배워라

일본 만화 '드래곤볼'의 주인공은 당연히 손오공이다. 그렇더라도 베지터를 공동 주연으로 꼽는 것에 반대할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대해 어떤 사람이 '손오공과 베지터 둘 가운데 진정한 천재는 누구일까?'라는 주제로 쓴 글을 본 적이 있다. 정말, 누가 '진정한 천재'였을까?

그 글의 결론에서는 오히려 베지터를 진정한 천재로 치켜 세웠던 걸로 기억한다. 왜냐하면 손오공은 중요한 순간마다 다른 스승을 통해 뭔가를 깨달아가는 데 비해 베지터는 순수하게 자기 수련에 의해서 한 단계씩 벽을 깨가며 한계를 넘어섰기 때문이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베지터가 자기 자신의 재능에 관한 한 손오공보다 훨씬 뛰어났던 것 같다.

하지만 결국 무공 실력에서 베지터는 손오공을 앞서지 못했다. 왜? 좋은 스승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스승들 덕택에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을 최대한 활용해서 가장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수련 방법을 택했기 때문에.

(2004. 7. 26., 2006. 2. 6.)

Biotherm Eau Pure Invigorating Cool Mist

2009년에 독일-스위스 여행을 떠났을 때 독일 사람들이 냄새(향기)에 민감하다는 동수 형의 조언에 따라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구입한 향수. Biotherm이 향수로 유명한 브랜드는 아니지만, 샘플로 뿌려준 향기가 마음에 쏙 들어서 바로 구입했다. 직장동료 석매니저님 얘기로는 남자 향수 같지 않다고도 하고...^^ 꽤나 상쾌하면서도 묘한 향기가 나는 향수였다.

나 역시도 이 향수가 무척 마음에 들었고, 1년쯤 써서 다 떨어졌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이 향수를 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한국 면세점에서는 죄다 품절된 상태였고, 얼마전 싱가폴 여행(회사 출장)을 떠났을 때 어쩔 수 없이 다른 향수를 구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저께 김포 집에서 대구로 돌아오는 길에 마지막 부분을 썼는데, 향이 너무 진해 스스로도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 기간이 다 돼서 그런 걸까? 아니면 애초에 그런 향이었는데, 그땐 몰랐던 것 뿐이었을까?

(2010. 12. 6.)

내 생애 가장 소중했던 한 점

2010년 5월 25일 대구구장 (야구장) SK 와이번스 vs. 삼성 라이온즈. 결과는 1 : 14 삼성 라이온즈 승리.

SK 입장에서는 지독하게도 안 풀린 경기였다. 에이스 김광현은 석연치 않은 스트라이크/볼 판정 끝에 5회만에 4실점하며 물러났고, 시험삼아 올려본 전병두는 한 타자도 잡아내지 못한 채 강판, 뒤이어 올라온 엄정욱은 대량실점하며 점수 차는 14점차까지 벌어졌다. 타선마저 침묵하며 0 : 14.

웬만한 팬이라면 중간에 나갈법도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야구란 9회 투아웃에서 10점차가 나더라도 뒤집어질 수도 있는 게 야구 아닌가? 물론 확률은 엄청나게 떨어지겠지만, 80년 정도 야구를 본다고 하면 한 번 정도는 그런 일이 일어날 법도 한데, 그 경기를 놓치면 얼마나 아깝겠는가? 또한 그 오랜 시간을 기다려서 그런 경기를 한 번 보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사실상 이기는 건 포기해버린 8회초. 바뀐 포수 이재원과 유격수 나주환 역시 아웃되며 투아웃. 이 상태에서 중전 안타로 박정권이 1루에 출루했는데, 타석에는 박재홍이 들어와 있었다. 별 기대도 안 하고 있었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큰 타구를 날리며 2루타를 쳤고, 그 사이 박정권이 홈까지 밟아 드디어 1점. 그런데 이 한 점은 너무나 소중해서 30년 정도 되는 내 생애 가운데 그토록 기뻐서 소리질렀던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어떤 경우에 한 점은 그런 의미로 남을 수도 있는 것이다.

(2010. 5. 31.)

왕과 처녀

"혹시 지금까지 알려진 모든 이야기들이 다 이런 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이런 식이란 여러 가지를 말하고 있기도 하다. 매우 멋지게 알려진 사람이나 이야기를 뒤집어 생각해보면 사실 수많은 궁상과 청승으로 이루어져 있지는 않던가? 예를 들면 나폴레옹이 빨래하는 장면이라든가 롬멜이 자신의 접시를 설거지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어떨까?

(2007. 4. 25.)

네가티브 피드백

일본 후지 TV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의 2003년 가을판 마지막 이야기는 '형태가 겹칠 때'라는 단편이다.

갑자기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환영이 보이게 된다. 자신에 대한 환영은 자기 자신에게만 보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안 보인다. 동일 공간에 다른 시간의 동일한 물체가 존재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 사실에 따라 양팔 저울을 가지고 이리저리 옮겨보자 어떤 공간에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 공간 위에 양팔 저울을 올려놓자 그대로 양팔 저울이 공중에 뜬 채로 멈춰 있는다.

이 모든 일들이 왜 일어났을까? 그것은 미래의 특정 시간에 모든 사건(event)들이 멈춰버리기 때문이다. 이게 뭔 말이냐고? 그것은 기묘한 이야기를 직접 보고 알아내기 바란다.

중요한 것은 그 특정 시간이 되어서 더 이상 공간 중첩이 문제가 되지 않자 저울이 떨어져 바로 그 위치에 존재하게 된다. 즉, 미래에 공간이 겹치기 때문에 그 공간은 예약되어 있었고, 이걸 안 사람들이 저울을 그 위에 올려놨기 때문에 바로 그 '미래' 순간에 저울이 그 위치에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이건 물건뿐만 아니라 사람도 마찬가지다. 각자 자신의 환영을 보고 그 위치를 찾아갔기 때문에 그 특정 시점에 자기 자신이 그 환영의 위치에 있게 된다. 말하자면 자기 자신의 미래에 대한 환영을 몰랐다면 자신이 미래의 그 위치에 가지 않았겠지만, 이를 알았기 때문에 바로 그 위치까지 갔던 것이다.

미래를 알기 때문에 이것이 과거의 행동에 영향을 미쳤고, 이 행동 때문에 미래가 정해졌고, 다시 이 미래 때문에 과거의 행동이 정해지고, 다시 이 행동 때문에 미래가 정해진다. 그렇다보면 모든 사물과 사람들의 행동은 어떤 한 가지 사건(event)로 수렴(converge)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네가티브 피드백(negative feedback)이다.

결국 '우연'이라는 요소가 제거된다면 세상은 네가티브 피드백에 따라 어떠한 한 가지 방향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연이라는 요소는 세상의 속성에서 절대 빼놓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내가 신이라면..., 그랬을 것 같다.

(2006. 6. 18.)

폴 오스터 vs. 헤르만 헤세 II

최근에 나는 김포 집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이것저것 생각하다가 폴 오스터와 헤르만 헤세의 차이를 니체 철학의 흡수 정도로 환원(reduce)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폴 오스터 소설의 주인공들처럼 헤르만 헤세 소설의 주인공들은 모든 가치와 체계를 망치로 부수는 작업을 충실히 수행했다. 하지만 이 친구들은 자신들이 모든 가치와 체계를 망치로 부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는 망치로 부수지 못하였다. 그 결과에 따라 의식적인 각성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었을까?

반면 폴 오스터 소설 주인공들은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자신의 가치와 체계를 무너뜨리지 않는다. 모든 일들은 마법과도 같은 우연에 따라 발생하거나 아니면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운명에 따라 자신의 세계를 파괴하는 것으로 보였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고 싸운다." (데미안)

그렇지만 왜 굳이 알을 깨고 나와야 한다는 목적을 가져야 할까? 모든 가치가 부정되어야 한다면 그 목적마저도 부정되는 것이 올바를 것이다. 그 대신 목적이 부정되었다면 이제 '우연성'이라는 것을 긍정하고 거기에 따라 한껏 흥을 내며 살아가는 편이 낫지 않을까?

(2006. 3. 4.)

달랍

올해 여름 하와이 퍼시픽 대학교(HPU)에서 어학연수할 때 있었던 일이다.

HPU는 캠퍼스에 무선 네트워크 시설을 잘 갖추어 놓았다고 선전하였다. 하지만 지정된 곳 안에서도 내 PDA와 노트북은 무선 네트워크 억세스 포인트(Access Point)를 찾지 못했다. 왜 이럴까? 한국에 있었을 땐 무선 네트워크를 잘 썼는데. 왜 여기선 이 모양일까?

이유가 궁금해진 난 HPU 미더 도서관(Meader Library) 직원에게 이유를 물었다. (당시 교내 또는 호텔에서 유선으로도 노트북을 통해 인터넷에 접근(access)할 수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궁금했다.) 그러자 그 직원은 다른 당담자(coordinator)를 불렀다.

그 당담자는 젊은 여성이었다. 나이는 나랑 비슷해 보였고, 하와이 원주민과 동양인의 모습이 반반씩 섞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얼굴에 여드름이 꽤 많아서 다른 사람들이 척 보기에는 예쁘다는 표현을 하긴 힘들 것 같았다.

어쨌거나 내 짧은 영어 실력을 총동원하여 얘기를 했더니 자기도 잘 몰라 자신의 상사(boss)에게 물어보고 오겠다고 하였다. 조금 기다리니 다시 돌아와서는 '달랍' 계정(account)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달랍? 그게 도대체 뭐란 말인가? 알아 들을 수 없어서 '달랍'이라고 흉내내어 발음하여 그게 뭐냐고 물었지만 제대로 알아들을 순 없었다.

결국 포기하고 그대신 'Wireless Network'이 가능하다고 써 있던 표지판 밑에 문제가 있으면 'HPU pipeline'에 문의하라는 문구가 있던 걸 기억하고 HPU pipeline에 대해서 물었다. 그 당담자는 친절하게도 HPU pipeline 계정을 만드는 페이지까지 안내해주었고, 결국 나는 HPU pipeline 계정을 얻을 수 있었다. (http://campus.hpu.edu) 그리고 그걸 이용하여 호텔에서 PPP 접속을 통해 남은 기간 동안 인터넷을 실컷 즐길 수 있었다. (호놀룰루에서 시내 통화는 일단 50센트를 지불하고 나면 무제한으로 쓸 수 있기 때문에 PPP 접속도 한 번 접속해 놓으면 돈이 더 들어가지 않았다.)

그런데 당담자가 친절하게 설명해줄 때 느꼈는데, 무척 예쁘다는+_+ 생각이 들었다. 여드름이 좀 많지만 그건 얼마든지 치료(?)할 수 있는 거고. 마치 의천도룡기(영웅문 3부)에서 장무기가 독 때문에 얼굴이 흉측하게 변한 은리 주아를 보고서도 예쁘다고 생각했던 것과 비슷했다. 예쁘긴 예쁜데 좀 묘하게 예뻤다. 한국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얼굴이어서 더 그랬던 걸까? 그래서 기억에 더더욱 남았다. 하지만 다시는 그 사람을 볼 기회가 없었고, 친절함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할 기회도 없었다.

HPU PEP 프로그램 마지막 날. (아마 다시는 HPU에 오지 않으리라!) 난 마우이 섬으로 출발하기 위해 호놀룰루 공항으로 갈 버스를 타야 했다. 하지만 그 전에 비상 식량(?)으로 초코바를 몇 개 사가지고 갈 생각을 했다. 그래서 슈퍼마켓(Drug)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슈퍼마켓 앞 횡단보도 신호등 옆에 왠지 낯익은 얼굴이 있는 게 아닌가!? 바로 그 직원이었다! 미더 도서관 담당자!!

HPU 캠퍼스를 걷는 가장 마지막 시간에 그 사람을 다시 만나다니. 난 환하게 웃으며 날 기억하냐고 물었고, 그 사람도 날 어렴풋이 알긴 아는 것 같았다. (또는 아는 체한 것일 수도 있고) 어쨌거나 간단히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난 내 고마움과 함께, 당신이 너무 예쁘게 생겨서 기억할 수 있었다는 얘기도 뻔뻔스럽게 했다. (I could remember you especially, 'cause you're so beautiful.) 그리고 이 말도 잊지 않았다. 당신이 달랍이라고 말했던 것이 사실 다이얼-업(Dial-Up)을 가리킨다는 사실도 깨달았다고. (I found out that in fact 'Darlarp' means 'Dial-Up'.)

"이것 역시 한 판의 바둑입니다."

바둑엔 정석이라는 것이 있다. 상대와 내가 승부를 위해 치열하게 맞붙는 상황에서 내가 최선의 수를 두면 상대 역시 최강의 수를 두게 마련이다. 이러한 것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기본적인 모양에서는 서로간에 불만이 없는 수순이 완성되곤 한다. 그것이 바로 정석이다.

그렇지만 정석(定石)이라는 말의 기본적인 뜻과는 달리 정석이 항상 일정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최강으로 버티느냐 아니면 쉽게쉽게 가느냐는 어디까지나 본인의 선택이다. 물론 항상 최강으로 버틸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순간 앗차 잘못하면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도 있다. 이럴 때 필요한 게 바로 쉬운 정석이다. 쉽게쉽게 가도 하등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물론 중반 이후에 더더욱 복잡한 변화를 연출할 수도 있다. 다만 기본적인 모양만 쉽게 갈 뿐.

꼭 어려운 정석을 따라 둘 필요는 없다. 선택 결과에 크게 불만이 없다면 언제나 "이것 역시 한 판의 바둑"이 되는 법이니까.

(2005. 7. 7.)

폴 오스터 vs. 헤르만 헤세

지금 내가 가장 즐겨 읽는 작가가 폴 오스터라면, 9년 전 내가 고등학생일 때 가장 즐겨 읽던 작가는 헤르만 헤세였다.

'데미안'을 읽는다는 것은 마치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는 행위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데미안을 통해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던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눈을 뜨고, 주위를 새롭게 바라보게 될 것이다. 자신의 세계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보고는 "자신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달을 수도 있을 것이다.

데미안은 이러한 사실을 깨닫는 일종의 선악과이기 때문에 데미안을 읽은 사람들은 눈이 밝아진다. 문제는 이러한 것이 자칫 다른 사람들에 대한 우월감으로 연결되기 쉽고, 이마에 '표적'이 없는 사람들을 비웃기 쉽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데미안은 결코 충분한 작품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입구와 같은 역할을 할 뿐이다. 예를 들어 헤르만 헤세의 소설에서는 자신의 세계를 파괴하는 것이 어떤 '더 나은' 세계로 달려가기 위한 수단이 되곤 한다. 이것은 완전히 니체를 잘못 이해한 헤르만 헤세의 오만 아닐까? 각각의 세상에 우열이란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그런지 데미안에는 웃음 또는 무한한 긍정이 없다. (헤르만 헤세의 다른 소설 역시 마찬가지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옛 가치의 파괴 및 새로운 가치와 세상을 창조해내는 힘의 원인에 관한 것이다. '수레바퀴 아래서'를 생각해볼까?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에게선 너무나 죽음의 향기가 짙다. "아아... 아우구스틴이여... 이제 모든 것은 끝났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한스 기벤라트를 동정해야 할 의무가 있다. 왜냐 하면 한스 기벤라트야말로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주위의 기대, 화려한(?) 시절, 소중한 우정, 비극적인 결과. 물론 '환상의 책'에서 짐머 역시 한스 기벤라트와 다를 게 없다. 자신에게 닥친 최악의 상황. 하지만 짐머에겐 앨/머/그/랜/드/가 있었다.

좀더 단순하게 얘기하자면 이런 거다. '싯달타'에서,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에서, '유리알 유희'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고행에 나서고, 결국엔 스스로 각성한다. 그리고는 절대 삶의 긴장감을 놓지 않으려고 한다. 이것이 가능할까? 혹시 모르지. 그렇지만 '공중곡예사'에서, '거대한 괴물'에서, '우연의 음악'에서 우리를 세상으로 인도하고,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구원해 주는 것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다. 우연 아니면 운명, 사랑과 같은 것들이다.

(2005. 6. 22.)

완다와 거상

건장한 청년 한 명과 그가 타고 있는 말 한 필, 그리고 말 앞 쪽에 실린 담요 한 장. 청년은 어느 거대한 사원에 이르고... 담요를 걷어내자 그 속에 덮여 있던 것은 물건이 아니라 소녀였다.

청년의 이름은 완다. 완다는 영혼을 빼앗긴 소녀를 구원하기 위해 도르민과 계약을 하고, 거상을 하나씩 하나씩 처치해 나간다. 거상을 처치할수록 소녀의 영혼의 빛은 점점 또렷해지지만 그와 함께 완다는 점점 악마로 변해간다.

시작은 누군가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애를 쓰면 쓸수록 자신의 영혼은 악마성에 침식당한다. 완다는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구원하려 힘썼지만, 정작 구원받아야 하는 건 자기 자신이었다.

이것은 단지 완다와 어떤 소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우리들 자신의 이야기이다.

이코(ICO)와 마찬가지로 완다(WANDER)도 구원받을 수 있을까?

적어도 완다가 바로 구원받을 수는 없었다. 이 짧은 삶 속에서... 완다는 칼에 찔려 악마에게 침식당한 검은 피를 내뿜는다. 뿐만 아니라 아예 악의 화신 그 자체가 되어버린다.

그렇지만 단지 그것이 끝일까? 우리가 구원받을 길은 없는 것일까? 인생 한 번을 기준으로 놓고 보자면 그럴 것이다. 그렇더라도 너무 실망할 건 없다. 완다에겐, 우리에겐 또 다른 삶이 주어질 테니까. 그리고 완다가 구원했던 바로 그 소녀가 우리를 새로운 삶으로 이끌 테니까.

(2006. 5. 14.)

전혜린

전혜린이라는 이름을 아시나요?

이 사람은 내 18(19?)세 때 망령처럼 나타났다. 물론 나에겐 곧 잊혀졌지만, 그건 뭔가 해소되지 않은 채였다. 마치 체한 것이 넘어가지 않은 것처럼. 그동안... 온갖 상처를 무릅쓰고 싸운 결과로 이제는 '웃으며' 이 사람에 대해 논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인문학적 성과는 여기까지 왔고, 아직은 여기까지다. 나중에 이와 상반되는 글을 쓰더라도 지금의 내가 이런 글을 남기는 "순간" 자체는 가릴 수 없겠지.

덧붙여서 이 글이... 24세 내 일생의 마지막 글이 될 것이다. ("THEN FEEL FREE TO COME BACK.")

이 사람은 분명 '리마커블'한 사람이다. 동시대 사람에 비해서 하나의 '보랏빛 소'로 인정받기엔 충분하다. 마케팅 관점에서 여러 사람에게 읽힐 가치가 있고, 또한 그렇게 포장되어 이른바 '전혜린 신화'까지 만들어졌다. 34년에 태어나 65년 자살한 사람. 알고보면 뭔가 해 놓은 건 없는 사람. 그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으며, '전혜린 마니아'들을 만들어 냈을까?

(주의: 독설에 가까운 글이니 되도록이면 여기서 그만 읽어 주시기 바란다.)

이러한 물음을 일단 제쳐두고 전혜린의 사상에 대해서 평하라면 난 굉장히 부정적인 대답을 내놓을 것이다.

1. 계급문제에 대해서 철저하게 무관심했다. (또는 무지했을 수도 있다.) 그희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그냥 그에 걸맞게 '평범하게' 사유했을 뿐이다. 이건 잘못이라고 부르긴 힘든 것일 수도 있으나, 전혜린이 풀고 싶었던 문제의 해답을 완전히 빗껴가는 시초가 되지 않았을까? (자신의 대지 위에서 철학을 시작하지 못했다. 그러니 스스로 뭔가를 해내지 못했을 수밖에.)

2. 니체를 잘못 읽었다. 시몬느 드 보봐르와 니체 같은 사람의 철학에 굉장한 관심을 기울였다고 하나 그희의 수필에 가끔씩 인용한 니체의 아포리즘(명구)을 보면 '실존주의자'로서의 니체를 이용했다는 생각이 든다. 니체가 부수려고 했던 가치들의 끝자락을 (특히 염세주의를?) 전혜린은 잡고 있었다. (이것이 나에겐 가장 큰 불만이다.)

3. 어떠한 가치를 창조할 것인가? 자신의 삶에 대해 싸우는 것은 물론 훌륭한 것일 수 있고, 인정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그렇다면 전혜린은 그렇게 '싸운' 다음에 무엇을 창조하고 싶었을까? 50~60년대 한국의 암울함을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있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다른 땅에 추구한 가치들을 그대로 그리워하는 것은 '퇴행 현상'에 지나지 않는 것 아닌가?

4. 21세기...에 한 소년이 생각하기엔 이건 '평범한, 너무나 평범한' 인생일 뿐이다. 자신의 한계를 (싸우긴 했으나) 극복한 것도 없고, 배운 것들을 넘어서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대단한 작품을 창조한 것도 아니고. 그희의 존재미학마저도 나에겐 매력없을 뿐.

대강 이런 방향으로 난 전혜린에 대해 생각한다. 좀 더 급진적(radical)으로 비판하자면, 솔직히 전혜린이 남긴 건 아무 것도 없고 단지 그 '태도'만이 추앙받는다는 얘기 같은데 이건 뭔가 석연찮다.

아마도... 도대체 "인물이 없던"(by Y 선생님) 시대에 이어령, 김남조와 같은 (그렇고 그런) 문인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전혜린은 어떤 '교양'의 성채가 되어 갔고, 이것이 전파되고 전파되어 점점 신화가 되어가지 않았을까? 분명 '그냥 보통 사람'보다는 뭔가 있어 보일 테니까...

수필집 한 권만 읽고 이런 평가를 내린다는 게 전혜린(또는 그 추종자)에게 매우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미안하다. 하지만 전혜린이 남긴 게 그거밖에 없다. (유고집 하나가 더 있긴 하다.)

그렇다고 전혜린의 글이 영 쓰레기인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훌륭하다. 이 사람의 수필집을 보면 재밌는 글이 많고, 특히 남녀관계에 관한 것은 탁견이라 부를만한 것들이 많다. 결혼 문제라든가 육아(^^)에 관한 것들 말이지. '60년대에 벌써 이런 걸 생각하다니!'하는 부분도 꽤 있다.

전혜린의 삶 또한 그렇게까지 폄하할만한 것은 아니다. 그 50년대에(!!) 홀홀단신으로 독일유학까지 다녀와 번역 분야에 공헌한 점도 인정해야겠지.

딱 그것까지다. 50~60년대 한국 지식인계의 스타. 이제 더 이상 거기에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 바꿔 말하면 50~60년대 역사나 시대상을 연구하는 사람에게 전혜린은 충분히 연구(?)할 가치가 있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잊어도 좋다~ 우리에겐 "각자의 하늘"이 있으므로.

삶을 극복하기 위해 오히려 '삶에 대한 무게'를 쌓아올리는 건 이제 그만 두도록 하자. 그보단 모든 짐을 벗고 자신의 '가치'를 찾아 나서는 게 삶의 첫걸음이 되어야 할 것이다.

몇 가지 사족:

1. 전혜린 아버지(전봉덕)의 행적이 참 재밌기 그지없다. 전형적인 일제앞잡이/미군부역자. 양지만을 좇은 사람. 뭐... 덕택에 어떤 사람은 그(!!!) 50년대에 독일 유학을 갔다올 수 있었으니 참 좋았겠다. 손이 있다면 여기에 대해서 미안하다는 한 마디 얘기 정도는 해줄 수 있었잖아?

2. 전혜린의 묘비명에는 '전헤린'이라고 써 있다고 한다. 전혜린이 살아 있을 때 필명 같은 것에 일부러 '혜' 대신 '헤'라고 쓴 것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왜 일부러 그렇게 했을까? 전혜린의 특성상(^^) 웃기려고 그러진 않았을 것 같다. 아마도 독일어 발음으로 '혜'는 못 하고 '헤'는 잘 하니까 그렇게 바꿔 쓰지 않았을까? 전혜린이 자주 인용하곤 하는 헤르만 헤세...처럼 말이다.

(2004. 12. 6.)

톨스토이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이 글은 문이중선이 지은 [Y의 계보학]에서 발췌한 것이다.)

베텔스만 북클럽의 (가입)할인행사에 힘입어 단돈 이천원에 '톨스토이 단편선'을 구해 읽을 수 있었다.

훌륭한 작품이다.

그와 동시에 위험한 작품이다. ...

그렇다면 어떻게 읽어야 할까?

[바보 이반] 같은 위대한 작품을 보면, 이반의 형들 같은 윤똑똑이들이 아니라 이반과 같은 바보야말로 (그러한 참된 노동자야말로!) 세상을 구원한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게다가 세상의 구원을 이루는 방법은 어떠한가? '물질'의 소유에서 자유스런 세상. '군대' 따윈 필요하지 않은 세상. (혹시 존레논은 이 글을 모델로 '이메진'(imagine)이라는 노래를 만들었을까나?)

그리고 [촛불]에서 밝히듯 그러한 세상을 이끌어내는 것은 선동적인 투쟁이나 폭력이 아니라 바로 사랑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콕 집어서 얘기하듯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하는 마음으로 사는 게 아니라 바로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산다"는 말이다.

게다가 이런 얘기들을 누구나 다 알아들을 수 있는 쉽고 재밌는 이야기로 남겼으니 톨스토이의 재능은 찬양받아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간과하고 지나갈 수 없는 문제가 있다. 비록 무척 훌륭하고 듣기 좋은 말이지만 여기엔 '힘'이 거세되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하루에 열네시간씩 중노동에 시달리며 온종일 먼지를 뒤집어 쓰며 일하는 사람에게 "그래도 사랑하라"고 얘기하는 건, 어떻게 보면 굉장한 폭력이다. 노동조합에서 수백명이 다쳐가며 법정 근로 시간을 줄여 놓았더니 톨스토이의 얘기를 인용해가며 "굳이 그러지 않아도 나쁜 사람은 언젠가는 보답을 받을 거야"라고 말한다면 그건 무임승차에 지나지 않는 얘기다. 그건 단지 비루한 자의 존재미학일 뿐.

더더욱 고약한 문제는, 톨스토이가 문제의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과 중세 시대 교회의 설교가 얼마나 차이가 나느냐는 것이다.

물론 중세에 어떤 내용을 설교했는지는 정확히 알 길이 없지만 모든 것(삶이든 학문이든)의 기준이 '신'의 말씀이 되고 그 때문에 세상은 질식했다. 그것이 중세라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다. 아마 톨스토이는 근대적인 문제(탐욕, 물신주의, 소외 등등...)를 해결하기 위해 중세와 크게 다르지 않은 해결책을 들고 나온 것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렇게 해서 각각의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과연 그런 행복과 스팀팩 맞고 좋아하는 마린의 행복에 차이가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톨스토이 단편선은 늙을 대로 늙어 빠진 노인네가 늘어놓는 잔소리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

그렇다.

...

그럴지라도 너무 슬퍼하지 말자. 그리고 다시 한 번 톨스토이의 얘기를 천천히 생각해 보자.

참 안타깝게도 물신에 대한 탐욕과 오만으로 가득 넘치는 근대를 넘어설 그럴싸한 방법은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국가사회주의 실험(구 소비에트 연방). 잘했건 잘못했건 그 나라는 이제 존재하지도 않는다. (중국이나 북한이 있지 않느냐고 물으면 KIN~) 그리고 (역겨운) 자본주의의 승리와 함께 우리는 "부자되세요"가 인사말이 되고, "젊었을 때 10억을 버는" 게 목표가 되는 세상에서 살아가게 된 거다.

"참 안쓰럽게도..."

사실 이를 극복할 해답은 없다. 그것이 해답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주저앉을 것인가? 아니. 절/대/로/. 비록 날개는 산산조각 부서져 날개짓마저 힘겹지만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날아오르는 신천사(앙겔루스 노부스)처럼 모든 해답과 가능성을, 그리고 그 차이를 알아보는 게 바로 현대의 존재미학이 되어야 한다.

그런 거라면..., 그 중심에 너무나 옳은, 너무나 옳기 때문에 진부할 정도로 옳은 톨스토이의 사상을 한 번 넣어보면 어떨까? 단, 우리가 '톨스토이적 가치'에 얽매이는 게 아니라 그것을 스스로에게 맞게 즐길 수 있다면 말야. (이제 신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가치를 창조해야 하니까.)

그러므로 톨스토이는 더 널리 읽혀야 한다. 단편선들이 막 출간되던 1880년, 1890년이 아니라 바로 2000년대에. 2004년에.

아이들이나 보는, TV에서 광고나 하는 동화로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심장을 찌르는 그런 글로서 더 널리 읽혀야 한다. 심지어 이 모든 톨스토이 사상의 위험성을 감수하더라도!

아마도... 사람 안엔 "다른 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을 테니까 말이다.

(2004. 11. 29.)

11월 13일

"우리가 이야기하려는 사람은 누구인가? 전태일(全泰壹). 평화시장에서 일하던, 재단사라는 이름의 청년노동자. 1948년 8월 26일 대구에서 태어나, 1970년 11월 13일, 서울 평화시장 앞 길거리에서 스물들의 젊음으로 몸을 불살라 죽었다. 그의 죽음을 사람들은 '인간 선언'이라고 부른다." - [전태일 평전] 제일 첫 부분 (/조영래)

과거를 기리는 건 그다지 현명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럴지라도 잊지 않고 싶은 사람들, 잊지 않고 싶은 날들이 있게 마련이다.

나에게 11월 13일은 그런 날 가운데 하나다.

(2004. 11. 11.)

"나라고 뭘 알겠어요?"

"WHAT DO I KNOW?" (나라고 뭘 알겠어요.) - 영화 '스토리텔링' 픽션 에피소드에서 캐서린의 대사.

어린 시절 내가 다닌 초등학교(국민학교)는 고촌초등학교다. 이름부터 어쩐지 시골스럽잖아? ^^ 그때는 정말 시골 맞았다. 5학년이나 6학년은 두 학급 정도였으니까. (베이비붐 세대를 맞아 우리 땐 세 학급으로 늘었다. :D)

뉴튼의 전기를 읽고 느낌이 꽂혀서 그랬는지 어째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난 크면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농구 선수나 야구 선수도 동경하긴 했지만 그건 꽤 나중의 일이었다. =)

그래서 어린 마음에 무척 아쉬운 일이 하나 남아 있다. 초등학교 4학년에 올라가면서 김포군(그땐 김포'군'이었다!)의 모든 초등학교 4학년을 대상으로 영재 선발 시험을 치렀다. 국어, 산수, 과학, 지능 이렇게 네 분야였던가? 정확한 건 기억 안 나지만 학교 선생님을 따라 김포 읍내의 어디론가 (김포초등학교?) 가서 시험을 치렀던 것 같다.

그 시험에 통과한 소수의 학생들(30명? 40명? 정도 될까나?)에겐 정기적으로 이것저것 교육을 시키는 프로그램이었는데 특히 컴퓨터 교육이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선 무척 나도 그런 걸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1989년, 그 당시엔 컴퓨터가 무척 귀했다!!)

물론 난 그 시험에 떨어졌다. 난 머리 쓰는 건 뭐든지 잘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건 아니었다. 적어도 그때까진 그런 게 아니었던 거다.

이것저것 머리쓰는 수학문제 정말 재밌었는데... 과학 실험도 해보고 싶었고 컴퓨터라는 놈도 내가 배우면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하지만 내 능력(?)은 거기까지였고 시험에 떨어진 나에겐 기회가 없었다.

나를 두 번 죽이는 일은 그 다음에 바로 벌어졌는데 교내에도 영재반을 만들어서 클럽 활동 시간에 따로 교육을 시키는 것이 있었다. (재밌는^^) 수학 문제 풀이랑 이런저런 과학 실험을 하는 거였다. 거기에 처음에는 나도 지원해서 들어갔다가 사람이 너무 많다고 생각해서 그랬는지 두 달 정도(또는 한 학기?) 지나자 성적(?) 순으로 짤랐던 것 같다. 아닌가? 김포군 영재에 된 사람들만 남았나? 기억은 확실하지 않구나. 어쨌거나 나는 해당사항 없는 얘기였고 또 한 번 '짤렸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던 문예반(왠지 여성스러운데?)으로 옮긴 기억까진 남아 있다.

뭐 그렇다... 분명 나는 성적이 안 좋았겠지만 난 정말 하고 싶었다. 이것저것 교육도 받고 신기한 풀이도 배우고, 실험도 하고... 어린 시절 내가 꿈꾸던 낭만이랄까? 그렇지만 할 수 없었다. 왜? 성적 때문에!

혹시라도 과외라도 받았으면... 좀 나았을까? 에그... 허튼 소리까지 :'(

그래서 그랬는지 당시에 귀찮다는 이유로 땡땡이를 치던 내 친구(머리가 좋았는지 성적이 나보다 월등했다.)가 정말 미웠다.

'그럴 거면 차라리 빠지고 그 자릴 나한테 줘...'

이런 악마적인(!?) 생각까지 분명 그 때 했다. ......

그 뒤 9년. 난 마음껏 돈지랄해 줄 학교를 찾아 포항공대로 갔다. 여긴 정말 최고다. (너무 천박하게 생각하지 마시길...) 학교에 넘쳐나는 게 전산 자원이고, 화학실험이라도 할 때면 수십만 원짜리 시약을 마음껏 쓴다. (뭐... 맨날 그렇게 쓰는 건 아니다. ^^) 조금씩 낡아가긴 하지만 온갖 전자 실험 기자재들이나 물리 실험 기구 같은 건 분명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었다.

행복하냐고? 그건 좀 다른 문제고 ^^ 분명 과학이나 공학을 하고 싶은 사람에게 천국인 건 맞는 거 같다.

하지만 난 항상 9년전을 생각한다. (이젠 15년 전이구려... 에효. -_-) 왜 이렇게 좋은 환경을 단 300명의 학생한테만 주는 걸까? 분명 어린 시절 나처럼 정말정말 배우고 싶은 사람이 많을 텐데. 게다가 보너스로 여기 역시 땡땡이 치는 사람 많다. -_-)9 (솔직히 나도 화학 실험하는 건 참 싫었다. 미안.)

모든 사람에게 배우는 길이 열려 있다면, 그렇다면 어린 시절 나를 두 번 죽이는 일은 없었을 텐데. 그리고 지금도 소질을 썩혀가며 어디선가 다른 일을 하고 있을 수많은 가능성들이 꽃을 피울 수 있을 텐데.

그러면서 생각한다. '그 많은 학생들을 무슨 돈으로 가르치려고?' ^-_-^ 글쎄... 이건 아무래도 불가능한 일 같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바란다. 바랄 수 없는 걸 바란다. ...

뭐, "나라고 뭘 알겠어요?" (WHAT DO I KNOW?)

(2004. 11. 8.)

사람에겐 누구나 자신의 하늘이

"이 세상에 의미 없는 건 없고 내가 모든 걸 다 아는 것도 아냐. 세상은 경이로워서 이 커다란 하나의 세계 바깥에 또 다른 뭔가가 펼쳐져 있을지도 모르지." - 카오루 후지와라의 [네가 세상을 부수고 싶다면]에서

병상에 소녀가 누워 있다. 다 죽어가는 것 같지만 반응이 없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식물인간 상태로 있었기 때문이다. 소녀의 오빠가 간절히 기도하지만 소용없는 듯하다

삐- ...

소녀의 죽음을 확인한 오빠는 고개를 떨군다.

너무 슬퍼하지 말아요. 제 전생에 어머니는 나처럼 식물인간이었어요.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어머니가 빨리 돌아가시기만을 바랐어요. 그런데 내가 이렇게 막상 식물인간이 되자 다른 사람들이 저에 대해 떠드는 소리가 다 들리는 거예요. '쟨 언제까지 누워 있을 거래니?' '우리가 다 귀찮다.'... 처음에는 너무 고통스러워졌지만 차차 깨달았어요. 아... 내 전생의 어머니도 나와 똑같은 고통을 겪었겠구나. 깨닫게 돼서 다행이야. ...

"이 세상에 의미 없는 건 없고 내가 모든 걸 다 아는 것도 아냐. 세상은 경이로워서 이 커다란 하나의 세계 바깥에 또 다른 뭔가가 펼쳐져 있을지도 모르지."

비록 (나름대로) 금단의 열매를 따먹으며 여기에 이르렀고 지나온 모든 삶을 후회해 보기도 하였지만 역시 딱 거기까지! 비록 내 삶 자체에는 의미(meaning of life)가 없을지라도 한살이의 모든 게 다 의미(meaning in life) 있는 것이니까.

덧붙여서 이 글을 오해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스런 마음에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전생이 있고 없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자신의 삶을 승화시키느냐가 중요한 것 아닐까?

(2004. 10. 28.)

이건 칼보다 강합니다.

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고 한다.

twee [twi:] (a) <영> 매우 귀여운; 새침 떠는. (- 야후 영한사전)

사실 속뜻은 '계집애들처럼 귀여운 척하는' 같은 뜻이라고 한다. 소심하고 수줍은 많은 소년/소녀들에게 비아냥거리는 의미일까? 하지만 트위~하게 살려고 마음먹은 사람으로서 이런 정의는 맘에 들지 않는다. 트위는 희게(HYGGE)와 함께 가장 끌리는 단어인 걸.

그냥 트위는 트위다. 그냥 트위팝은 트위팝이다. 차라리 아래 노랫말에서 얘기하는 대로 생각하자.

SAID THE HERO IN THE STORY
"IT IS MIGHTIER THAN SWORDS
I COULD KILL YOU SURE
BUT I COULD ONLY MAKE YOU CRY WITH THESE WORDS"
- GET ME AWAY FROM HERE I'M DYING (by 벨 앤 세바스찬)

이야기 속 영웅이 말했대.
"그건 칼보다 강하니까
난 당신을 죽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난 이런 말로 당신을 울릴 뿐이네요."

트위(TWEE)라는 단어에 대해 이보다 더 잘 설명해주는 말이 있을까?

(2004. 10. 25.)

"너무 열혈이라"

"후후... 그건 너무 열혈이라 (나에겐) 별로던데." - 김현탁, 2004년 봄 '청공'을 보던 중선에게.

내가 (그리고 현탁이 형이^^) 좋아하는 아다치 미츠루 작품 속 주인공의 특징이 있다. 중요한 순간에는 분연히 일어나기도 하지만 (비록 분연히 일어날 때도 주로 울 때가 많다) 일상적인 삶의 습관이 게으름 또는 농땡이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죽은 동생을 위해 열심히 하겠다고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 뛰어야 한다'는 식으로 각오를 한 타츠야. ('터치'의 주인공) 다음날 새벽 시계 알람에 놀라 일찍 일어나지만 죽은 동생의 사진을 보며 다시 다짐한다. "내일부터 열심히 할께." 그리고 다음 장면엔 개(펀치)가 짖는다. "왕~ 왕~"

하지만 '청공'과 같은 작품에선 주인공에게 너무나 큰 중압감이 있어서 그런지 정말(!!) 열심히 한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그 작품 속 주인공은 종종 웃을 때가 있지만 작품을 읽는 나에게 웃음은 주지 않는다.

잘 해야 한다는 압박감. 웃음을 앗아가는 수많은 사연. 그리고 그것들을 이겨냈을 때 주어질 (달콤할 것 같은) 열매. 이런 것들이 우리 삶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빼앗아 가는지 함 헤아려 보면 정말 억울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그렇게 꽉 짜인 삶 속에선 어떤 새로운 게 나오기 힘들지 않을까?

그래서 난 과감하게 말하련다.

"열혈은 은이고, 농땡이는 금이다." - 중선.

(2004. 10. 25.)

그희

디시인사이드에 '그분갤러리'가 생긴 기념으로 글을 남긴다. =) (멋지다! 그분!!)

우리 말엔 원래 대명사가 없다(고 한다). 거의 쓰이지 않았다는 얘기다. 쓸 이유가 없었으니 안 썼겠지. 당연한 얘긴가? 그래서 그런지 대명사가 가리키는 말을 직접 쓰는 게 훨씬 명확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외국 언어로 된 말글을 번역해야 할 때나 현대 언어(?)의 흐름상 얘기할 때 대명사를 안 쓸 수는 없는 일. 이런 식이다.

  • I ☞ 나
  • YOU ☞ 너
  • HE ☞ 그, 그이(?)
  • SHE ☞ 그녀

혹시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영어를 배우면서 'SHE'를 '그녀'라고 번역할 때 얼마나 어색했는지 기억할까? (사실 Miss와 Mrs.의 차이에 비하면 별거 아니긴 하지만 말이다.)

게다가 HE와 SHE를 나눈다는 게 얼마나 어색했던지... 아마 SHE의 영향으로 우리 나라에도 SHE에 해당하는 어휘가 생긴 것 같다. 바로 '그녀'.

그런데 '그녀'라는 말, 너무 안 좋잖아? "그녀는 달립니다."라고 얘기하면 꼭 "그년은 달립니다."라고 얘기하는 것 같으니까 말이다.

그런데다가 '그녀'라고 발음할 때 'ㄴ'에서 혀가 입천장 위에 닿아야 하기 때문에 약간이나마 불쾌한 느낌마저 드는 것 같기도 하다.

대학교 2학년 때 들은 철학 수업 때 이를 두고 시인(사실 철학자지만^^) 박이문 선생님이 이 단어를 '그희'로 바꾸어 쓰면 어떻겠냐고 제안한 적이 있다. 이 단어의 어원이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계집 희(熙?)자에서 유래한 것 같기도 하고 '희'로 끝나는 이름이 많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은희의 노을'만 봐도 말이지... :D

중요한 건 '그희'의 어감이 무척 예쁘고 좋다는 거다. (덤으로 모르는 사람한테 써도 나름대로 뜻도 잘 통한다.) 한 번 따라해 보자!

최종병기 그희, 아름다운 그희, 내 첫사랑 그희, ...

(2004. 10. 20.)

이코 (ICO)

이것은 게임이다. 하지만 단지 게임으로 취급하기엔 너무나 아까운 작품이다.

머리에 뿔이 솟아 있었다는 이유로 마을의 희생양이 되어 혼자 갇히게 된 주인공 '이코'. 그리고 이 주인공을 구원하는 사람은 저 높이 허공(!)에 매달린 철창에서 지상으로 내려온 '요르다'.

하지만 구원자라고 나타난 요르다는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라 힘없는 소녀에 불과했다. 따라서 언뜻 보기엔 구원자라기보단 이코가 구해줘야 할 소녀로 생각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 시작부터 그랬다. 철창에서 요르다를 빼내고, 검은 괴물이 요르다를 업고 도망칠 때 나무 막대기로 괴물을 때려 부셔야 한다. 건널 수 없는 장애물을 건널 때면 이코가 먼저 가서 도와 주어야 겨우 함께 다닐 수 있을 정도다.

그러기 위해... 이코는 요르다의 손을 잡는다. (I(나) + CO(함께) = ICO)

손을 맞잡아라, 이코야. 너는 마치 촌뜨기처럼 걷고 있구나. ㅋ ("FOLD YOUR HANDS CHILD, YOU WALK LIKE A PEASANT")

하지만 손을 잡은 이상 이코와 요르다의 운명은 하나! 어떻게든 성을 탈출해야겠다는 것이다.

알고보니 쓸모없는 소녀로 알았던 요르다는 이 성의 주인인 여왕(마녀?)의 딸이었고, 그래서 그런지 종종 신비한 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마치 '천공의 성 라퓨타'에 나오는 봉인 시스템처럼 닫혀 있는 문 앞에 요르다가 서면 열리는 게 그 예다.

모든 역경을 뚫고 이제 성을 탈출하기 직전! 어떤 사태에 따라 (☜ 게임을 해보면 압니다^^) 둘의 탈출 계획은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참 안쓰럽게도" 서로 헤어져야 하게 된다. 요르다의 한 마디.

"노노모리" (NONOMORI, "고마워"). (☞ 게임 이코에 등장하는 모든 말은 일종의 '외계어'다.)

극적으로 살아난 이코에게 밝혀지는 무서운 진실들. 그리고 결말.

"그녀의 손을 놓지 않아... (마치) 내 영혼마저 날아가 버릴 것 같아..."

과연 이코는 구원받을 수 있을까? 정확히 말한다면, 이코와 요르다는 서로를 구원할 수 있을까? 이코는 다시 요르다와 손을 붙잡을 수 있을까!?!?

(2004. 10. 17.)

'장미의 이름'이 주는 교훈 하나

'교훈'...이라는 표현이 맘에 들진 않지만 900 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에서 우리가 확/실/하/게/ 얘기할 수 있는 사실은 딱 하나다.

'책 볼 때 손가락에 침 묻혀가며 보지 말자.'

(2004. 10. 10.)

기적의 테란 나도현

가장 '감동을 주는' 게임을 만든 선수, 게임팬이라면 누구나 임요환(김동수도 있긴 하지만^^)을 꼽을 것이다. 가장 어려웠던 1.07시절 테란으로 스타리그에서 우승했던 임요환. 여기서 굳이 더 얘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 다음은? 수많은 선수들이 있다지만... 작년 봄 당대최강 이윤열을 혈전끝에 이긴 박경락(저그)이라든가 프로토스의 영웅 박정석(프로토스), 최근 새 신화를 쓰고 있는 박성준(저그), 드래군 50원씩-_-먹는 사탄의 프로토스 강민 등등...

하지만 난 여기서 새로운 선수를 꼽으려고 한다. 기적의 테란 나도현!

그에겐 이미 수많은 별명이 붙어있다. 이윤열과 최연성을 물량으로 이기며 알려지기 시작한 나도현은 스타리그에서 벙커링에 의한 연속 승리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다. 이때 붙은 별명이 '미스터 벙커링' 또는 '나도벙'(나도봉).

이번 질렛트배 스타리그 조지명식에서 이윤열에게 "윤열아, 사랑해!"라는 므흣*-_-*한 멘트를 날리며 붙기 시작한 미소년, 거기에 경기전 과로 증세로 정신을 잃고 쓰러지며 이른바 '병약 미소년'의 이미지를 얻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연승가도를 달리던 박태민, 대테란최강 '세러머니토스' 전태규, '악마의 프로토스' 박용욱 등등... 당대 고수(?)들이 줄줄이 나도현에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것도... 이상하게 게임이 말린 채 맥을 못 쓰면서... 그래서 그에겐 또 새로운 별명이 붙었다. '흑마도사'...

나도현의 시작은 심히(!!!) 미약했다. 드론의 아버지 임균태-_-에게 어이없게 해처리만 몇개씩 제거하고 순회공연만 열심히 다니다가 패한 경기. (챌린지리그 김성제/나도현/문준희/임균태가 속했던 조 5차전) 그경기가 끝나고 책상을 손으로 탁탁~ 치며 안타까워하던 나도현의 표정은 아직까지 잊을 수가 없다.

난 그렇게 나도현이 잊혀질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도 NHN 한게임배 온게임넷 스타리그를 앞두고 만약 이번에도 스타리그 본선에 진출하지 못하면 게임을 접을 생각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의/미/있/는/ 사건의 시작은 그러한 몰/락/과 함께 시작하는 것일까? 자신의 모든 의지와 신경과 자존심을 걸고. 나도현은 게임에 진정으로 집중하기 시작했고 NHN 한게임배 스타리그 3위, 이번에 열린 질렛트배 스타리그 4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더군다나 준결승에서 박정석을 상대로, 34위전에서 최연성을 상대로 보여준 명승부는 나도현의 능력을 '살인운빨'이라고 의심하는 사람들에게까지 강한 인상을 심어주기 충분했다.

그리고 오늘... 17일. 나도현.

팀의 모든 기대를 한몸에 받고 3:3 동점 상황에서 7차전 출전... 상대는 신데렐라 테란 김현진. (이녀석도 사연이 많은 놈이긴 하다.) 중반에 안좋은 상황 속에서 패배가 예측되기도 했지만 자정(AM0:00)-_-;;;;의 정기를 받기 시작한 흑마도사 나도현은 갑자기 힘을 내기 시작하여 대역전승에 성공! (상대였던 김현진은 무슨 마법에 걸린 듯이 헤맸다.) 이로써 한빛소프트는 프로리그 첫 우승에 성공하였다.

이런 선수에게 '기적의 테란'이라는 별명은 전혀 아깝지 않다.

"DEATH OR MAGIC AWAITS."

(2004. 7. 17.)

열정

... 무릇 일을 시작하는 데에는 신비스런 힘이 깃들어 있다... 항상 여행을 떠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만이 마비된 습관에서 벗어나리라... 그럼 좋아, 마음이여, 작별을 고하고 건강하여라! - 유리알 유희의 명인, 요제프 크네히트의 시.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에서...)

나에게 주어진 일이나 내가 해야 하는 일에 대해선 난 대충 넘어갈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물론 누구나 이렇게 말하긴 쉽다. (나 역시도.) 하지만 지키긴 어렵다.

유미리. 일본 작가 가운데 그런 작가가 있다. 불행히도 아직 나는 그희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다. 다만 내가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시인 박이문(교수^^)의 강의를 통해서다.

박이문이 사랑했다고 하는 세 여인. (사랑했다고 그랬나? 존경했다고 그랬나? >.<) 안티고네. 카르멘. 그리고 유미리.

그 가운데 유미리는 글을 쓸 때 마치 펜촉에서 잉크가 흐르는 것이 자신의 손끝을 통해 피를 내는 것처럼 생각했다고 한다. 여기엔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난 그희의 '열정'을 다시 한 번 생각한다.

상상을 해보라구. 자신의 온갖 생각을 담아 한 글자, 한 글자씩 적을 때 그 과정 마저도 대충 하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자신의 심혈(心血)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하나씩 적어 나가는 느낌.

(2004. 4. 6.)

포시스 KIN

지난 5월 28일부터 실시된 2학기 수강 신청에는 새로운 환경이 도입되었다. 지금까지 써오던 팀즈(TIMS) 환경을 버리고 포시스(POSIS)를 수강 신청할 때 쓰기로 한 것이다. 포시스는 "21세기를 대비한 캠퍼스 정보화 사업"으로서 시작된 것이다. 이는 우리 학교의 새 통합정보시스템으로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가동되었다. 덧붙여서 '포시스'라는 이름이 지난 1999년 8월 교내 구성원들의 투표를 통해 정해졌을 정도로 매우 중요한 시스템이기도 하다.

[오직 익스플로러 손님만 들어오세요]

그런데 포시스 첫 화면에 접속하면 다음과 같은 글귀를 볼 수 있다. "POSIS는 Internet Explorer(해상도 1024x768) 4.0 이상에서만 지원됩니다. (Netscape 등 기타 Browser는 지원되지 않습니다.)" 포시스를 이용하려면 익스플로러를 써야 한다는 얘기다. 넷스케이프를 비롯한 다른 웹 브라우저를 쓰면 포시스의 로긴 화면밖에 구경할 수 없다.

이에 관해서 시스템개발팀은 지난 4월 7일 팀즈에 익스플로러를 포시스의 브라우저로 선택한 배경에 대해 설명하였다. 이 글은 익스플로러 선택 근거로 ⓛ 익스플로러의 시장 점유율이 90%에 가깝다는 점 ② 넷스케이프를 지원하는 사이트가 거의 없다는 점 ③ 익스플로러에 비해 넷스케이프가 지원하는 기술이 떨어진다는 점을 들고 있다.

하지만 "21세기를 대비한" 환경이라는 포시스에서 지원하는 브라우저가 익스플로러에 한정된다는 것은 왠지 찜찜하다. 게다가 익스플로러를 쓰려면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 계열 운영체제를 써야 하지 않는가? 대표적으로 그누/리눅스 (GNU/Linux) 환경에서는 포시스를 쓸 수 없다. 당장 수강 신청을 해야 하는 학생이 그누/리눅스 시스템을 쓰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웹은 누구나 공유할 수 있어야 하는 정보]

사실 월드와이드웹(이하 웹, WWW)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컴퓨터의 역사는 기껏해야 60년 정도이고, 웹은 고작 10년이 지났을 뿐이다. 그렇지만 컴퓨터와 웹은 현재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가장 거대한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컴퓨터는 매우 빠른 계산 속도를 바탕으로 사람의 힘만으로는 할 수 없었던 것들을 해내었기 때문에 환영받았다. 일기예보나 달착륙과 같은 것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그럼 고작 10년 정도밖에 안된 웹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컴퓨터를 일상 생활에서 쓰다보면 정보를 주고받아야 할 때가 많다. 가령 보고서를 쓰고 이를 다른 곳으로 옮겨가서 출력한다든지 하는 일이 빈번히 일어난다. 수강 신청을 비롯한 각종 학사 업무나 직원들의 일 역시 기본적으로는 이러한 '정보'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웹이 없었을 때 이러한 일들은 매우 번거로웠다. 매킨토시 컴퓨터에서 작업한 파일을 저장한 뒤 386 컴퓨터에서 이를 읽어들이는 일은 쉽지 않았다. 같은 기종의 컴퓨터를 쓰고 있었더라도 마이크로소프트 워드에서 작업한 문서는 한글에서 읽어들이기 어려웠다.

하지만 웹은 이러한 문제점을 모두 해결하였다. HTML로 문서를 만들면 ① 컴퓨터를 갖고 있고 ② 컴퓨터가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으며 ③ 웹브라우저를 실행시킬 수 있다면 누구나 이 문서를 볼 수 있게 되었다. 학교의 웹서버가 그누/리눅스 기반이든 선의 솔라리스(Solaris) 기반이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사용자가 학교의 웹 서비스에서 얻는 정보는 똑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이란 과거의 불편을 곧잘 잊곤 하는 것일까? 특히 우리 나라의 많은 웹페이지들은 "익스플로러에서 가장 잘 보입니다" 또는 "익스플로러만 지원합니다"라는 문구를 달고 있다. 그렇다면 위 세 가지 조건에 '④ 마이크로소프트의 익스플로러를 쓰고 있다면'이 추가되어야 할 것이다.

[불행했던 과거로 되돌아 갈 것인가]

웹 개발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는 이미 이에 대해서 걱정하였다. 다음은 테크놀로지 리뷰 (Technology Review) 1996년 7월에 실린 인터뷰의 일부이다.

"웹 이용자는 갑자기 페이지를 들어갈 때 다음을 읽게 될 것이다. '죄송합니다. 당신은 이 사이트에 들어가기 위해서 회사 X에서 만든 소프트웨어가 필요합니다.' 예전에 당신은 다른 컴퓨터, 다른 워드 프로세서, 다른 네트워크에서 쓴 문서를 거의 읽을 수 없었던 적도 있었다. '이 페이지는 브라우저 X에서 가장 잘 보입니다'라고 웹 페이지에 표시한 사람은 웹이 나타나기 이전의 매우 나빴던 옛날을 그리워하는 것과 같다."

자, 그렇다면 "21세기를 대비한 캠퍼스 정보화 사업"의 중심 포시스는 어떠한 브라우저를 선택해야 할까? 또는 선택하지 말아야 할까?

(2001. 6. 12., 포항공대신문 기고)

역사의 주인공은 바로 나

'박하사탕'이라는 영화가 새해 초 전국에서 개봉되었다. 이 영화의 작품성은 평론가들한테 극찬을 받기도 하였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인 김영호는 젊은 시절 경찰로 근무한다. 그러면서 군사독재 정부에 반대하는 학생들을 고문하고 붙잡는 역할을 담당한다. 비극이라고 할만한 이런 현실의 원인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라고 해야 할 것이나 그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주인공을 둘러싼 주위 인물들만이 등장한다.

사실 그가 특별히 악의를 품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주위 형사들이 놀러가자고 얘기해도 자기가 해야 할 일인 물고문에 성실히(?) 임하였으며 룸살롱의 미성년 취업자를 돌려보내기도 하였다. 이런 점을 두고 일부 비평에서는 순수하던 그를 망친 것은 파시스트 정권 내지 역사와 같은 추상적인 것들이었다고 아쉬워하기도 하였다. 김영호가 피해자였다고 하는 얘기인데, 영화를 보면 계속해서 김영호는 가해자로 등장한다. 이는 "역사의 물결에 어쩔 수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듯하다. 김영호는 가해자였고 부끄러운 역사를 만든 인물 가운데 하나였던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새해에 우리 시민사회에는 중요한 흐름이 있었다. 시민단체들이 연대해서 '낙천·낙선 운동'을 강력하게 펴나간 것이다. 물론 아직도 상황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몇몇 정당에서 낙선운동을 불법이라고 규정하며, 심지어 "야당 탄압을 위해 배후세력이 숨어있는 음모를 꾸민 것이다"라고 음모론까지 내세우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시민단체는 '시민불복종'에 따라 선거법 위반까지 감수하며 개혁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잠깐만 가만히 생각해보자. 시민단체는 누가 만들었는가? 이들 단체는 정부나 국회처럼 법에서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못박아 놓은 단체가 아니다. 다시 말해서, 시민단체는 바로 시민들이 스스로 모여서 만들었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는 왜 이 모양이야?" "정치인들이 썩어서 투표할 맛이 떨어졌어." 이렇게 방관하던 자세에서 우리 시민들은 스스로 권리를 찾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바로 시민단체이고 낙선운동이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까지 꾸준한 사회운동으로 우리 사회를 개혁하는 데 힘을 쏟았으며 개혁에 게으른 정치인들을 가려내기 위해서 낙선운동까지 이르렀다. 이 모든 것을 시민들 '스스로' 모여 이룬 것이다.

그러던 중 필자는 며칠 전부터 각 기숙사 동마다 '프로야구 선수협 지지 서명서'가 게시판에 붙어있는 것을 보았다. 프로야구 선수협 문제는 요즘 유명한 사회적 관심사라서 대부분의 학우들이 잘 알고 있다. 필자에게 인상적인 것은 선수협 문제보다 그 서명서 자체였다. 어느 누구도 서명서를 게시판에 붙이라고 얘기하지도 않았지만 뜻 있는 일부 학우들이 서명서를 각 기숙사 동마다 일일이 붙여놓은 것이다. 여기에 총학생회와 같은 자치단체나 외부 단체가 준 영향은 전혀 없었다. 우리가 스스로 찾아 나선 것이다.

필자가 재작년부터 2년 동안 자치 단체를 볼 때 가장 아쉬웠던 것은 자치 단체의 활동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자치 단체를 우리와 '별개의' 단체로 생각하고 있는 학우들의 생각이었다. "학생식당 밥이 맛이 없네", "어느어느 직원이 불친절해서 기분 나쁘다", 또는 "다른 대학에서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는데 역시 우리학교는 아무 것도 안 해"라고 불평할 때 대부분 화살은 자치단체 쪽으로 날아갔다. "상황이 이런데 총학생회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총학생회가 발빠르게 대처를 하지 못하니까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죠"라고 얘기하면서.

그렇지만 사실은 우리들 스스로 했어야 하였던 것이다. 우리들 손으로 선거를 통해 총학생회를 구성했다고 해서 모든 일에 총학생회와 같은 자치단체가 나서주길 바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러한 대표단체들이 언제나 우리가 바라는 대로 행동하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김영호와 같이 수동적인 모범생이 될지 이번 총선시민연대 사람들과 같이 능동적인 시민이 될 것인지는 모두 우리 선택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이번 선수협 지지 서명서 사건(?)을 보며 한 가닥 희망을 잡는다. 비록 올해는 총학생회나 동아리연합회와 같은 자치단체의 집행부 구성이 힘들 것 같지만 그것이 오히려 '우리 스스로 하자'는 인식을 우리들에게 심어줄 수 있지 않을까.

(2000. 2. 16., 이 글은 포항공대신문 2000년 2월 16일자에 학생기자 기획부장으로서 '일흔여덟 오름돌' 컬럼으로 올린 글이다.)

침묵하는 내 모습을 보며

노암 촘스키라는 언어학자가 있다. 그는 '생성문법'을 비롯해 언어학계에 매우 대단한 업적을 남겼다. 그렇지만 그는 언어학 연구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전공과 별로 상관없는) 미국 사회의 병폐와 비리에 치열하게 맞서 온갖 비판으로 사회 구조의 모순을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하였다.

사실 그렇게 용감한 행동을 하기란 말은 쉽지만 실천하기 정말 어렵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가 종사하는 분야가 아닌 곳에 대해 잘 모르는 '비전문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쪽에 있는 '전문가' 집단에서 "당신이 뭘 아느냐?"고 묻는다면 사실 할 말이 없다. 그래서 노암 촘스키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우리가 전공하는 분야가 아닌 곳일지라도 약간만 관심을 갖는다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결코 없다"고.

나는 공과대학에 다닌다. 게다가 우리 학교는 단과대학이다. 그래서 내 주위에는 온통 공과대학 학생뿐이다. 흔히 공대 학생을 '공돌이'라 부르며 경멸(?)하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 맞는 말이기도 하다. 자연과학의 넓은 세계를 맛보다 보면 막상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해서는 무관심해지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렇지만 나는 미련하게도 촘스키의 말을 믿는다. 그래서 공과대학에 들어와서도 신문사 학생기자에 지원하였고, 지금껏 학생기자로 일하였다. '나는 불의에 타협하거나 침묵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였고, 또 나는 그렇게 행동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렇지만 뚜껑을 열고보니 그게 아니었다.

우리 학교에도 직원들의 노동조합이 있다. 생긴지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내가 대학교에 들어오기 직전인 97년에 생긴 것이다. 그렇지만 학교측은 노동조합을 가만히 내버려두기 싫었던 것 같다. 노동조합 처음에는 직원 200여명이 가입했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강요를 계속하였다. 인사에 불이익을 주는가 하면 슬쩍 탈퇴를 권고하기도 하여 노동조합원의 수는 계속 줄어들었다. 지금은 약 70명 정도만 남은 상태이다.

학교측은 작년에 직원들의 임금을 동결하면서 단체협약서를 통해 학교측은 99년에 임금인상과 처우개선을 약속하였다. 그러나 올해 들어 이를 일방적으로 무시하면서 지난 (9월) 3일 5차 교섭마저 결렬되었다. 약속은 안 지키면서 연봉제와 신인사제도를 도입하여 직원들의 실적을 인사에 반영할 것이라고 하니 노동조합에 대한 압력이 강화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나는 이러한 상황을 가까운 곳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나름대로 노동조합 직원들과 이야기도 하였고, 노동조합원이 학교 전자게시판에 글을 쓰면 매우 관심 있게 읽어보기도 하였다. 상황이 계속 악화되어갈 때마다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신문을 만들 때 이 사실에 대해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협상결렬과 관련하여 노동조합에 대한 문제를 기획기사로 취재하여 신문에 싣겠다는 내 주장은 주간교수의 논리정연한 반박에 막혀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내가 아는 것은 '학교측이 약속을 안 지켰다'랑 '노동조합이 탄압받고 있다'는 사실밖에 몰랐기 때문에 내 주장의 근거는 허약할 수밖에 없었다.

주간교수는 반대로 맞는 말만 골라서 했다. 학교 전자게시판에 노동조합 사람들이 올리는 글들을 모아서 따로 취재하는 일을 할 필요는 없었다. 또한 노동조합을 일방적으로 편드는 듯한 기사는 신문의 질을 떨어뜨릴 것이다. 그리고 나는 공부하는 공과대학 학생이고, 이번 사태를 제대로 취재할 능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나는 멍청하게도 이에 맞서서 행동할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다른 학생기자들과 같이 '이 기사를 꼭 신문에 싣도록 하자'는 의견을 이끌어내지도 못하였고 더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주간교수를 설득할 의지도 부족했다. 그렇게 협상결렬 사태는 달랑 작은 보도기사 하나로 들어가 버렸고, 그렇게 우리학교 9월 17일자 신문은 발행되었다.

이번에 나올 신문을 밤새도록 조판하다 문득 살짝 밝아오는 아침을 잠깐 바라보며 나는 다시 한번 다짐하였다. 다음에는 정말 침묵하지 않을 거야. 이번에는 바보처럼 불합리한 사태를 지켜보기만 하였지만 내 모습이 이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니까. 만약 침묵을 강요하는 곳이라면 내가 있을 필요도 없는 곳이겠지.

(1999. 9. 18., 1999년 10월 3일자 한겨레신문 난나이야기에 '문이중선'이라는 필명으로 실리기도 하였다.)

시간을 너무 아껴쓰지 말아요.

요즘 세상이 빨리 돌아가다 보니 시테크에 관한 관념이 상식처럼 퍼져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이 시테크를 대표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잠은 승용차나 비행기 안에서 해결하고, 그 나머지 시간을 몽땅 일하는 데 투자할 정도이다. 식사도 빨리 해치울 수 있는 설렁탕이나 비빔밥으로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언뜻 보기에 근사해 보인다. '나도 그런 사람들처럼 조금씩 잠을 자고 나머지 시간에 공부한다면 우등생이 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한다.

한편, 며칠 전 미국 기업의 효율성을 가장 떨어뜨리는 요인이 팩스나 복사기 같은 첨단 기기 고장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요즘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이 전자메일로 순식간에 편지를 주고받는다든지, 파일 복사 명령으로 문서를 1초도 안 되는 시간 안에 제출한다든지 하는 일에 익숙해져 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첨단 기기가 조금만 고장을 일으켜도 직장인들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애꿎은 기기만 발로차고 주먹으로 때리는 원시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고 한다. 첨단 기술도 사람의 조급한 마음은 해결해 줄 수는 없는 듯하다.

그런데 위 두 가지 사례는 자세히 살펴보면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바로 '시간'에 쫓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여유 있게 살지 못하고 시간에 쫓긴다? 어디서 많이 경험해 본 모습인데……. 아, 우리들이 학기 중에 사는 모습이 바로 그렇지 않은가.

이제 가을학기가 시작되면 한동안 학업 및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한 부담이 날이 갈수록 커질 것이다. 실험보고서에 밤새기 일쑤일 것이고, 계속되는 퀴즈와 숙제는 우리를 압박한다. 이런데 급급하다보면 어느덧 김우중 회장처럼 행동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일흔여덟 오름돌도 단숨에 뛰어가고, (심지어 친구들과 누가 빨리 뛰나 내기를 하기도 한다.) 밥 먹는 곳도 강의실과 가까운 학생회관 스낵코너를 택하고, 잠은 강의하기 10분 전 시간을 이용해서 잔다. 그럴듯해 보인다. 아낀 시간을 다른 일을 하는 데 쓸 수 있다면 생활이 얼마든지 풍족해질 것 같기도 하다.

과연 시간을 아낀다면 삶이 풍족해질까? 물질적으로는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문득 몇 년 전에 보았던 미카엘 엔데가 쓴 '모모'라는 소설이 떠오른다.

하루를 살면서 낭비하는 시간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까 이 시간들을 아낀 뒤 '시간도둑'들에게 시간을 저축한다. 이율은 5년에 100%(복리). 매력적인 제안 같다. 그러나 평화롭던 마을에 '시간 저축'이 성행하기 시작한 뒤로 마을사람들은 몹시 바빠졌다. 이웃들에게 따뜻하게 건네던 말도 사라졌고, 모든 일이 공식처럼 기계적으로 풀려갔다. 그만큼 사람들은 각박해졌다. 시간을 저축한다고는 하지만 사실은 시간을 빼앗겨버린 것이었다.

시간도둑들은 이렇게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아 자신들의 시간으로 만들었다. 이를 구해줄 사람은 주인공 모모. 시간도둑들에게 쫓겨 매우 조급해하는 모모에게 길을 안내하는 거북이는 너무 느려 터져 보였다. 이대로 가다가는 마피아들에게 금방이라도 잡힐 것만 같았다. 그러나 거북이는 바로 다음 순간의 미래를 보는 능력이 있어서 결코 잡히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바로 앞에서 마피아가 나타날 것이라는 미래를 읽었다면 옆쪽으로 가버리면 그만이니까.

그렇게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거북이를 따라가는 것에 모모는 익숙해지게 된다. 그러자 모모는 오히려 "가장 천천히 가는 것이 가장 빨리 가는 것"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자신이 쫓긴다는 사실을 극복하자 시간에 대한 여유가 생긴 것이 아닐까.

시테크라는 말이 어쩌면 그렇게 이중적인 말일지도 모른다. 시간을 아껴서 여유 있는 시간을 남겨보자는 것이 원래 목적인데, 나중에는 시테크에 발목이 묶여 시간을 빡빡하게 쓰며 마음에 여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 한번쯤 일을 미루는 한이 있더라도 시테크라는 관념을 걷어차 보는 것은 어떨까. 약간 과장한다면, 시간도둑들에게 시간을 빼앗긴 사람이 되겠는가 아니면 거북이가 돼 보겠는가.

(1999. 8. 27., 이 글은 포항공대신문 1999년 8월 27일자에 학생기자 기획부장으로서 '일흔여덟 오름돌' 컬럼으로 올린 글이다.)

요제프 크네히트(Joseph Knecht)가 누구일까?

크네히트의 부모가 누구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왜 크네히트의 이름이 '크네히트'인지 알 수도 없다. 다만 크네히트가 하인을 뜻하는 말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아마도 크네히트의 앞날과 '하인'이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닐까?

크네히트는 '음악의 대가'한테서 소명을 받는다. 소명이라는 게 사실은 카스탈리엔 종단의 초급학교인 에슈홀츠에 들어가기 위한 시험이었다. 그렇더라도 시험은 마치 크네히트에게 새로운 빛을 열어주는듯 하였다. 피아노 음률의 즐거움을 서로 주고받으며 크네히트와 음악의 대가는 서로 마음을 확인한다. 이 때부터 크네히트는 음악의 대가를 매우 존경하였으며 음악의 대가 역시 크네히트를 매우 사랑하였다. 그래서 이들은 계속해서 서로 생각을 나누게 된다.

크네히트는 에슈홀츠 과정을 마치고 유리알 유희에 흥미를 느껴 상급학교인 발트첼에 들어간다. 여기서 크네히트는 음악에 매우 큰 관심을 가져 유리알 유희나 그 밖의 교과를 꽤 소홀히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자 발트첼 교장이 해명을 요구하였고 크네히트는 당당하게 말했다.

만일 제가 정규적인 학과 성적이 아주 형편 없다면, 선생님은 저를 비난하셔도 좋습니다. 그러나 저는 선생님께 그렇게 비난받을만한 일을 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제가 자유롭게 보낼 수 있는 시간 가운데 4분의 3이나 그 전부를 음악에 기울인다 해도 그건 잘못이 아닙니다. 저는 학칙을 따르고 있습니다.

한편, 크네히트는 데시뇨리라는 평생 친구를 만나기도 한다. 사실 처음 만남은 논쟁에서 시작하였다. 데시뇨리는 외부의 학생으로서 마치 '청강생'과 같은 자격을 지녔다. 그래서 그는 카스탈리엔을 과감하게 비판할 수 있었다. 크네히트는 이러한 점을 참을 수 없었다. 그는 고아로 자라 바깥 세상을 많이 경험하지 않았고, 따라서 카스탈리엔은 그의 정체성에 매우 중요하였다. 그래서 크네히트는 분연히 플리니오에게 도전한다. 데시뇨리가 화려한 비유와 재치로 논쟁을 이끌었다면 크네히트는 언제나 어눌한 논조로 꿋꿋이 반박할 뿐이었다. 하지만 크네히트의 논리에는 성실한 힘이 담겨 있어서 그리 초라하지 않았다. 사실 이러한 일은 크네히트의 시간을 많이 빼앗기도 하였다. 그래도 크네히트는 이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재미있게도 크네히트가 이러한 논쟁으로 발트첼의 유명인사가 되었지만, 논쟁이 끝난 나머지 한 해 동안은 아주 조용히 숨어(?) 살았다. '은거'라고 해도 될 정도인데, 이를 통해 크네히트는 가만히 내면을 정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발트첼의 교육과정을 마친 뒤, 크네히트는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연구 시절을 맞는다. 말 그대로 자기가 하고 싶은 연구를 자유스럽게 할 수 있는 시절이었다. 이 때 크네히트의 창의력과 열린 생각은 절정해 달해 유리알 유희를 감정적이면서도 이성적으로 체득하게 된다. 또한 동양의 '역'에도 관심을 가져 노형이라는 사람과도 교류를 한다.

그러나 연구시절의 자유스런 기쁨도 곧 끝나고, 노형과 이별뒤에 크네히트는 본격적으로 카스탈리엔 종단 일원으로 일하게 된다. 재미있게도 카스탈리엔 종단은 카톨릭 종단을 교묘히 견제하는 관계에 놓여 있었다. 그래서 크네히트는 수도원과 카스탈리엔의 교류를 위해 수도원에서 2년 동안 살고, 그 능력을 인정받는다. 그 뒤 유희의 명수 바로 밑에서 유희 작업을 도운 그는 결국 40세 정도에 '유희의 명수' 직위에 오른다.

유희의 명수로서 크네히트는 정말 훌륭했다. 옛 유희의 명수들이 못했던 창의적인 유희를 그는 해냈다. 내부적으로도 상당히 튼실한 기초를 다지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런 업적 때문에 크네히트가 훌륭하다는 평가를 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크네히트는 카스탈리엔에 대한 의심을 끊임없이 품었다. 카스탈리엔의 상아탑 연구. 유리알 유희가 지금은 무엇인지도 모를 정도로, 의미가 없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그러한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오로지 '발전'에만 신경쓰는 종단 사람들. 그래서 크네히트는 과감히 카스탈리엔을 떠나기로 하였다.

결국 크네히트는 데시뇨리의 아들 티토를 가르치기로 결심한다. 이 결정을 할 때, 크네히트는 젊을 때 지었던 시를 하나 생각해 낸다.

무릇 일을 시작하는 데에는 신비스런 힘이 깃들어 있다. ……. 항상 여행을 떠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만이 마비된 습관에서 벗어나리라. ……. 그럼 좋아, 마음이여, 작별을 고하고 건강하여라!

젊을 때는 '초월하라'라고 제목 붙인 시였는데, 다시 보니 마음이 뛰기 시작하였다.

티토를 하루 저녁 가르친 뒤, 다음 날 아침 '수영을 같이 하자'고 제의하자 크네히트는 몸이 그리 좋지 않았지만 티토를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함께 수영한다. 그리고 차가운 물살에 크네히트는 사라진다.

(1999. 8. 3)

따뜻한 마음으로 널널하게

이 글은 '자비의 윤리학 / 박이문 지음'을 보고 쓴 글이다. 자비의 윤리학이 뭐냐구?

'선'과 '악'에 대한 논란은 그야말로 끝이 없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라는 질문부터 "굳이 선하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 또는 "동기가 중요한가 결과가 중요한가"와 같은 질문까지. 그런데 개인적으로도 이러한 질문에 명확하게 답하기 힘들다. 다시 말해, '선'과 '악'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이 존재하더라도 우리가 이를 알 수 없다.

요즘 텔레비전에서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엑스 파일'에서도 이러한 질문은 중요하다. 주인공 멀더는 미연방수사국(FBI) 요원으로서 외계인의 존재를 알게 된다. (또한 어린 시절 외계인한테 동생을 납치 당한 기억을 갖고 있다.) 그래서 그는 외계인의 존재가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를 감추려는 정부 고위층이 나쁘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 고위층 사람들이 외계인의 지배를 극복할 목적으로 일단 협력하는 척 행동하면서 그들에게 반란을 일으키는 것이라면? 외계인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갖는 집회가 외계인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면? 그렇다면, '외계인 반군'이 존재해서 외계인들에게 힘을 실어 주는 이들을 마구 죽이더라도 그것이 '악'한 행동이 아닌 '선'한 행동이 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진실은 잠시 감추고 외계인과 싸운 정부 고위층은 '선'한 일을 한 것이고 멀더는 '악'한 행동을 한 것 아닌가?

이러한 경우에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어떤 선택이 옳을지 모를지라도…. 그렇지만, 이왕 모른다고 해서 아무 행동이나 찍어서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왜냐 하면, 이러한 선택이 단지 노름 수준에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엑스 파일이 드라마가 아닌 현실이라고 가정하자. 그러면 이제 '선택'은 장난이 아니다. 상황이 정말 절박한 것은 멀더의 행동 하나 하나가 '60억' 지구 인구의 생명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만약, 다른 사람들을 살리려고 하다가 오히려 외계인에게 협력하는 결과를 낳았다면 멀더가 악한 사람이 되는 것인가? 사실 누구나 이러한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어떤 절박한 상황에서 선택해야 하는데 어떠한 경우가 선한지 모르는 상황. 이럴 때 과연 누가 자신 있게 행동할 수 있겠는가? 만일 자신의 생각이 마냥 선하다고 믿고서 행동하다가 다른 사람을 해친다면 그것이야말로 독선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자비의 윤리학에 따르면 이러한 현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선'과 '악'의 객관적 기준은 있더라도, 아무도 이를 확신할 수 없다고 가정한다. 어떤 행동이 악한 결과를 낳았다고 해도, 이를 두고 '나쁜 행동이었다'라고 평가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 태도에 관한 것은 따로 분리해서 생각하고 있다. 선과 악에 대한 진리는 알 수 없더라도 그 태도만큼은 좋은 태도를 알 수 있다. 착하게 살려는 태도, 성실히 행동하려는 태도만큼은 명확히 인정할 수 있다. 이는 그 '솔직성'만 인정된다면 누구나 "그 사람은 성실했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우리 생활을 다시 한번 되짚어 보자. 사람들을 일반적으로 '칼같다'와 '널널하다'라는 기준으로 나누곤 한다.

'칼같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잘못한 행동을 보면 참지 못하고 충고나 경고를 덧붙인다. 그러나 자비의 윤리학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태도는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왜냐하면 자비의 윤리학 원칙에 따라 우리는 도덕적 판단이나 결정에 독단적인 자세를 배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도 객관적인 해답이 무엇인지 안다고 자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기준에 비추어 충고를 일삼는다면 그것은 분명 모순 아닌가.

그 반대로 매우 '널널하게' 행동하는 사람 또한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이 자비의 윤리학에 따라 행동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 역은 분명히 성립할 수 있다. 즉 자비의 윤리학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들을 무척 여유 있게 대해 줄 것이다. 왜냐 하면, 자신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의 태도가 올바르기만 하다면 그 행동을 인정하여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내 행동 역시 윤리적으로 잘못된 판단이 개입되었더라도 그 태도가 진지했다면 그 역시 용서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기대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자비의 윤리학은 '자비스런' 마음에 따라 다음과 같이 생각할 것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도덕적인 행위가 선하고 악한지 또는 옳고 그른지 객관적인 진리가 있다고 믿지만 그러한 진리가 무엇인지 확신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우리는 잘못된(그른, 악한) 행동을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긴박성 때문에 우리는 어떠한 행동을 선택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 자유의지에 따라 성실하고 착한 태도로 행동을 '선택'하면 더 이상 죄책감을 갖는다든지 또는 남을 추궁하는 행동을 굳이 할 필요없다. 결국 이러한 행동을 '자비'스런 따뜻한 마음으로 받아주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1999. 5. 9.)

무소유, 중요하지 않은 것에 집착할 필요 없다.

톨스토이가 쓴 글에서…. 땅을 특이하게 파는 어느 한 마을이 있었다. 그 곳에서는 일정한 돈을 낸 뒤 하루 동안 열심히 뛰어서 자신의 영역을 만들면 바로 자기 땅이 되었다. 그래서 어느 한 사람이 돈을 내고 열심히 뛰었다. 다른 사람들이 "그러다 너무 지칠 거야. 쉬엄쉬엄 해"라고 말려도 계속 뛰었다. 결국 신기록을 세우며 엄청나게 많은 땅을 얻었다. 그러나 매우 힘들게 계속 뛰던 그 사람은 어느덧 힘이 다해 자리에 쓰러져서는 죽고 말았다. 결국 그가 차지한 땅은 한 평 남짓한 비좁은 무덤 터뿐이었다. 사실 살기 위해서 땅이 필요한 것뿐인데 그 사람은 미련하게도 땅을 위해 죽었다.

위의 이야기와 비슷한 경우가 일상에서도 많이 일어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 여러 도구들과 환경을 이용하게 된다. 공부를 하는데 책과 연필이 필요하고, 공학을 위해 컴퓨터나 여러 실험 기구가 필요하다. 또한 정보를 주고받기 위해 전화기나 텔레비전, 라디오 같은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목적이 아닌 도구에 머물러야 할 것들이 가끔 목적을 흐리게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책을 상당히 아끼는 사람이다. 그래서 좋은 책을 한 권 얻으면 책장을 조심스럽게 넘기며 흠없이 깨끗이 보도록 노력했다. 비단 소설책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어서 교과서를 볼 때도 언제나 깨끗이 쓰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러한 습관 때문에 책을 자세히 읽기 힘든 때도 있었다. 밑줄 하나를 긋는 일도 아까워했기 때문이다.

내 귀중한 친구 덕택에 이 습관은 차차 깨졌다. 그 친구는 책을 고문(?)하다 못해 아예 조각을 내서 얇은 책 여러 권의 형태로 책을 보곤 하였다. 내가 그 친구에게 "책이 너무 아깝지 않느냐"라고 묻자 그 친구는 "나는 책이 아까운 게 아니라, 책 속의 지혜를 못 얻는 게 아깝다"라고 대답하였다. 이 말을 듣고는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난 귀중한 진리를 그 동안 잊고 살았던 것이다. 책이 목적이 아니라 그 속의 지혜가 목적인데 그 것을 잊었다.

우리가 인생을 왜 사냐고 물으면, "'돈'때문에 살아요."라고 겉으로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실생활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실천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만큼 무소유의 진리를 온전히 깨달아서 생활에서 실천하기란 힘이 들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에서 어떠한 것에 집착하지 않도록 꾸준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무소유'라는 진리를 소박하게 삶에 뿌리 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1999. 5. 9.)

하울의 움직이는 성 - 미야자키 하야오

★★★★☆ 2004년 일본 (2005년 1월 13일 오후 4시 메가라인 김포)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천공의 성 라퓨타, 이웃집 또털어, 붉은 돼지, 모노노케 히메, ..., 그리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까지...

공통점은?

애니메이션.

땡~ 반만 맞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이다. 억울하다고? 뭐, 그럼 인심쓰는 셈 치고 맞는 걸로 해 두자.

극장의 컴컴한 어둠 속에서, 소피의 큰 눈을 보는 순간 정말이지 포근하다는 느낌... 딱 그 자체를 느꼈다. (옆으로 새는 얘기지만 소피의 목소리는 어쩜 그리 예쁘던지!!! ^^)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 특유의 향기랄까.

이것은 꼭 그림의 생김새에서만 맡을 수 있는 향기가 아니다.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림부터 주제, 구성, 그리고 마지막 엔딩 크레딧까지. 만약 미야자키 하야오의 향기를 맡을 수 없다면 당연히 이 작품이 맘에 들 리 없을 것이다.

"불의 7일간에 세계를 멸망시켰다는 전설을 들었을 뿐." -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 나우시카의 생각.

갑자기 무슨 얘기냐고?

불은 전쟁의 상징. 사실 새로울 것도 없는 얘기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에서 반전(Anti-War)은 지겨울 정도로 반복되던 주제였으니까. 그런데 뭔가 달라졌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결국 그대도 불을 쓰려고 하는가?" -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로 추정되는 어떤 작품에서.

1994년 완결된 이 작품에서 나우시카는 끝내 불을 쓴다. 공허하기 이를 때 없는 신, '빛'. 즉, 말씀을 누르기 위해서 거신병 오마에게 명령한다. "오마, 우리는 걱정말고 여기에 내 빛을 쏴!"

꼭 결말 부분이 아니더라도 확실히 나우시카에겐 '전사'의 이미지가 강하긴 했다. 자기 자신보다도 무거워 보이는 총을 드는 모습이 새겨진 표지는 아직도 잊혀지질 않는다.

하지만 2004년. 이 감독은 십년 전보다 좀 더 나은 해답을 얻은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늙은 것일까? 하울은 소피의 도움을 받아 '불'을 버린다. 자신의 심장을 바쳤던 불의 악마 캘시퍼한테서 다시 심장을 돌려 받아야 '계약'이 종료되는 것이다.

자, 작품에 분명히 나오지만 불의 악마 캘시퍼는 전쟁에 쓰이는 불과는 분명히 다르다. 오히려 캘시퍼는 그런 불들이 싸가지 없다고 싫어하는 눈치였다. 게다가 하울이 하는 주요 업무는 전쟁을 일으키는 함선들을 무장해제시키는 것. 캘시퍼는 이 일을 돕는 가장 중요한 동반자다.

그런데도 하울은 최종적으로 불에서 손을 놓는다. 이와 동시에 전쟁은 종료된다. 너무 무기력한 얘기 아니냐고? 아니... 이건 정말정말 중요한 문제다.

구속받지 않는 자유스런 삶과 평화를 갈망한 하울. 이를 '쟁취'하기 위해 끊임없이 싸워야 했고 그래서 불의 악마 캘시퍼와 계약을 맺었을 것이다.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의 계약이 떠오르지 않는가? :D) 그렇지만 싸우면 싸울수록 하울의 영혼은 더더욱 파멸될 뿐.

"부정한 행위를 부정한 행위로 갚을 수야 없지 않나?" - [크리톤]에서 소크라테스가 크리톤에게.

그렇다면 해답은? "영원히 여성적인 것만이 우리를 구원하리라"? (파우스트) 아마도... 소피는 눈물과 입맞춤(사랑), 그리고 하울의 무장해제를 통해 불로서도 막을 수 없었던 전쟁을 끝낸 셈이다. (약간은 톨스토이 말년의 결론과도 비슷하지 않아?)

이것이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중심 문제설정 아닐까? 또한 "나이를 먹어서 좋은 건 잃을 게 없다는 것"이라던 소피의 대사야말로 혹시 미야자키 하야오가 정말 털어 놓고 싶었던 말 아니었을까?

잘 모르겠다. 미야자키 하야오 자신도, 그리고 우리도 어쩌면 "다른 사람에게 말 못하는 저주"에 걸려 있으니 말이다. 그렇더라도 그 해답을 찾는 게 무척 즐거운 일이므로 너무 억울해하지 않아도 괜찮다. 소피도 저주에 걸렸다고 해서 엉엉 울지는 않았잖아...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해..." (저주에 걸린 직후 소피의 대사)

그리고..., 그래서 더더욱 기대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다음 작품은 과연 어떨까 하고.

(2005. 1. 14.)

장화, 홍련 - 김지운

★★★ 2003년 한국 (2004년 DVD)

"너, 지금 이 선택 후회 안 하겠어?"

세상에서 정말 무서운 건 무엇일까? 여기에, 이 영화에 답이 있다. "진짜 무서운 건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것".

"잊고 싶다"라는 말은 무언가를 부정하고 싶다는 뜻일 게다. 어떤 일을 자신이 저지르지 않았다고 끊임없이 자기암시를 하고 싶은데..., 그렇더라도 자기 자신을 속이는 건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아무리 정신착란에 시달리더라도 말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수미(임수정 분)는 바로 이런 것 때문에 공포와 환각에 시달린다. 자기 자신의 모호한 위치 선정(포지셔닝) 때문에...

딸인지, => 어머니의 사진을 정겹게 보기도 하고. 언니인지, => 자기 동생이라면 뭐든 할 것처럼 얘기한다. 아버지의 애인(!)인지, => 아버지를 보는 시선..., 심지어 같이 잠자리에 들기도 한다. 또는 새엄마인지 => 자신에 대한 증오를 새엄마에게 투사하여 마치 새엄마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이런 것들을 스스로가 헷깔려버린 거겠지.

그것은 아마도 자기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는 것과 분출하는 것, 두 가지 사이에서 갈등하던 자신 때문에 사랑스런 동생의 목숨까지 잃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이 큰 이유였을 것이다.

마치 잘 씌어진 그리스 비극과 같은 이 작품... 역시나 보고 나면 마음이 후련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볼 때는 공포감까지 더해져서 아찔아찔 하지만...) 예를 들어,,, 이런 심리겠지. '그래... 이렇게 불쌍한 사람도 있는데 나는 정말 괜찮은 거야!!!' (이런 걸 '연민'이라고 한다.)

자자, 이렇게 해서 이 영화는 운명의 물줄기 앞에 무력할 수밖에 없는 사람의 교만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는 무척 좋은 영화였다... >.<)乃.

p.s 현탁이 형에게 '장화, 홍련'을 봤다고 하니까 하는 대답. "두 개 다 봤어?"

p.s p.s 몸서리치도록 무섭다... 하지만 역시 장화, 홍련보다는 장마, 홍수가 더 무서운 거 같다.

(2004. 4. 19.)

아델 H. 이야기 - 프랑소와 트뤼포

★★★★★ 1975년 프랑스 (2001 하이퍼텍 나다, 2004 DVD)

"건지를 떠나기 전 아델은 일기장에 이렇게 기록했다 '젊은 딸이 대양을 건너 구세계에서 신세계로 연인을 만나는 놀라운 일을 해내고 말 것이다'"

내 이상형? 사람들한테 이상형에 대해 얘기할 때 난 두 사람을 들곤 한다. '유리가면'의 주인공 기타지마 마야. 그리고 '아델 H. 이야기'의 주인공 아델 H. (이자벨 아자니)

아델 H.는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둘째 딸이었다. H.는 위고(Hugo) 가문을 나타내는 것이다. 빅토르 위고는 당시 프랑스인들의 정신적 지주였다. 레 미제라블, 노틀담의 곱추와 같은 소설로도 유명했고, 진보적인 정치인으로 명망이 높던 사람이었다.

그런 빵빵한(?) 집안에서 자란 아델. 하지만 사기꾼 같은 놈한테 사랑에 빠진다. 영국의 핀슨 중위. 그 놈은 한껏 아델을 꼬셨다가 아델이 자신에게 목매게 되자 차갑게 돌아선다. 다른 여자를 만나고, 아델은 상대도 안 하려고 한다. 사실 도피성으로 미국에 간 것 같다.

그렇다고 포기할 아델이 아니었다. 아델은 사실상 가출하여,,, 바다를 건너 핀슨을 찾으러 간다. 아메리카 대륙까지.

하지만 아델이 집착하면 집착할수록 핀슨은 아델을 거부하고, 그럴수록 아델은 더더욱 큰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게다가 아델은 자신의 언니에 대한 안 좋은 추억이 있었다. 가족들의 사랑을 받던 언니가 젊은 나이에 불행하게 죽었거든.

그러다보니 자연히 아델의 건강은 급속도로 나빠지게 된다. 하지만 어쩌랴. 마치 인어공주처럼. 핀슨의 사랑을 얻고 싶어도 얻을 수가 없었다.

"난 어떻게 해야 하지? 눈이 빠질 것 같아 내 눈... 더 이상 볼 수가 없어 그 옷 트렁크를 쳐다볼 수 없어 언니의 옷들은 모두 버려야 해 태워버리거나 나눠줘 버려야 해 그 드레스를 참을 수가 없어 더 이상 보기 싫어 내 눈! ......"

결국 아델은 미쳐버리고 심지어 핀슨조차 못 알아본 채 거리를 헤맨다. ......

예정되어 있던 비극. 자신의 사랑을 조절할 수 없던 아델.

아델 H.를 연기한 이자벨 아자니가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장면에서 카메라를 멈추고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던 프랑소와 트뤼포 감독도 아마 그희를 사랑했겠지. 아마도. 그리고 나도.

이것은 내 45가지 절망적인 얘기 가운데 하나이다.

(2004. 3. 31.)

내 아버지는 스탈린 - 피터 덩컨

★★★★ 1996년 오스트레일리아 (2002 하이퍼텍 나다)

2002년 봄에 하이퍼텍 나다에서는 'Austrailia Contemporary 영화제'라는 것을 하였다. MSN 대화명에다가 '호주 꽁뗌 포로리 영화제'라고 장난스럽게 적기도 하며 조금 기대를 갖고 있던 나는 현탁이 형과 함께 '내 아버지는 스탈린'이라는 영화를 보러갔다. (참고로 '포로리'는 보노보노라는 만화 작품에 등장하는 다람쥐.)

이 영화는 영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스탈린과 소비에트연방(or 국가사회주의)에 관한 영화이다. (사실 영문 제목은 'Children of the Revolution'이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말자. 무슨 선동선전하는 영화가 아니라 사실상 코미디 영화다. *>.<* (물론 웃기기만 하는 영화도 아니다.)

이 영화의 (초기) 주인공인 조안은 열렬한 사회주의 좌파다. 그희는 50년대 오스트레일리아의 각종 시위에 앞장서며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사회주의 혁명을 이끌려고 애쓴다. 이른바 '운동권'인 사람이다.

웰치는 그런 그희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희를 쭉 따라 다니지만 이데올로기나 혁명 같은 것에 대해선 잘 모르는 사람이다.

엉뚱하게도(?) 매일 혁명 일으킬 생각만 하던 조안은 국가사회주의를 실제로 보여준 소련(소비에트 연방)을 너무나도 동경한 나머지 스탈린에게 자신의 활동을 설명한 편지를 쓴다. 우연히 그 편지는 스탈린과 그 참모들의 눈에 띄게 되고, 선전용으로 좋겠다고 생각한 스탈린은 조안을 소련으로 초청하기에 이른다.

조안은 너무나 좋아하며 소련으로 향하고, 스탈린과 함께 식사를 했다. 멍청한 스탈린은 조안에게 빠져서 +_+ 그희와 함께 밤을 보내려고 했으나 그만 복상사-_-;;;;해버린다. 너무 용을 써버린 것일까? 어쨌거나 조안은 급히 오스트레일리아로 도망치듯 빠져 나왔고, 얼마 뒤... 자신이 임신했다-_-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물론 역사적으로 이런 일이 실제로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노파심에 ^^)

그희는 자신이 임신한 애를 어떻게든 잘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자신의 영웅인 스탈린의 아이니까 ^^) 결국 자신이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는 웰치와 급히 결혼한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아이, 조세프 '조' 웰치. (참고로 스탈린의 영문식 이름도 '조세프'다.) 조안은 조가 어릴 때부터 매일같이 시위장에 안고 다니며 아이를 혁명가로 키우는 데 몰두한다.

경범죄 위반 같은 행위 때문에 자주 구치소에 갇히는 등 아이는 멍청한 스탈린의 아이답게 항상 멍청한 행동만 반복하지만 그것마저도 조안의 눈에는 혁명가의 자질로 보일 뿐이다.

하지만 양심적 병역 거부 때문에 감옥에서 젊은 시절을 지내던 조 웰치는 우연한 기회에 감옥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행동을 하게 되고, 그 일은 점점 부풀려져서 모든 죄수들의 희망이 된다. 그는 엄청난 배짱과 추진력으로 감방의 처우에 혁명적인 성과를 가져오며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게 된다.

그러면서... (어찌보면 무섭게도) 조 웰치는 스탈린과 닮아간다. 사회적 성공에 도취하여 어머니와 아내를 버리고, 모든 사람을 믿지 않고 의심만 가득찬 사람이 돼 버린다.

그리고 마지막에 마주치는 자신의 아버지 스탈린의 모습. (환상?) 아이는 자신의 아버지인 스탈린을 저주했지만 결국 점점 닮아갔던 것이다.

영화가 비극으로 끝났는지, 희극으로 끝났는지는 솔직히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래서 영화를 두 번 봐야 하는데... 기회가 없다. ㅠ.ㅠ) 다만... 멍청한 스탈린의 모습과 함께, 그와 다를 게 없는 그의 아들 녀석이 어떻게 유명한 혁명가로 성장해갈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며 스탈린이 독재자로 군림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날카롭고 풍자적인 해석을 보여준 것은 기억에 남는다.

나중에라도 혹시 TV에서 이 영화를 한다면 꼬~옥 보길 바란다. 정말 배꼽빠지게 웃기다. 그리고... 조금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도록 해줄 것이다.

(2004. 2. 26.)

고양이의 보은 - 모리타 히로유키

★★★☆ 2002년 일본 (2003 CGV 강변)

"넌 너의 시간을 살아야 해"

이건 작년 늦은 봄에 현탁이 형과 함께 본 애니메이션이다. (그때 내 홈페이지에 썼던 글을 조금 손봤다. ^^)

애니메이션을 좀 '아는' 사람들에게 '고양이의 보은'은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같은 대작을 본 사람들에게 성이 차지 않은 점도 있었을 것이고, '귀를 기울이면'이라는 대작의 소품 성격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도 했겠지. ('귀를 기울이면' 장면 가운데 바론 남작의 조각상이 나오거든...)

하지만 '귀를 기울이면'에 대한 내 평점은 ★★★. 오히려 고양이의 보은을 더 높게 평가해주고 싶다. 내가 요즘 고민하고 생각하는 문제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인 하루는 꽉 짜인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이다. 아침에 자명종 소리에 겨우 일어나 (그나마 제 시간에 일어나지도 못하지만)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해야 한다. 오죽하면 지각 걱정 때문에 맛있어 보이는 아침도 걸러야 했겠는가?

고양이 왕국은 일종의 유토피아(천국)처럼 그려진다. 하루는 그곳에 초대받았다. 자신이 원한다면 그 아름답고 풍요로운(?) 곳에서 평생 살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하루가 그 시스템에 편입되면 편입될수록 점점 고양이의 모습이 되어 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 대항해서 각자 존재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멋진 기사 '바론'. 바론이 살고 있는 고양이 사무소는 고양이 왕국과 완전히 상반되는 곳이다. 그 증거로 동상이던 까마귀(이름이 기억이 안나네...)가 갑자기 활기를 띠며 날개를 퍼덕거리며 날아가는 모습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건 마치 '피그말리온' 이야기에 나오는 것과 무척 흡사하다. 피그말리온이 자신이 만든 여자 동상을 너무나 사랑하여 신에게 간청하자 여자 동상이 정말로 생기를 얻어 피그말리온 앞에 바로 선 것과 같은! 그런 것이다. 이것은 그동안 끊어졌던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의 연결을 의미하며 신화적인 세계와도 맞닿아 있다. 즉, 인위적인 시스템에 의한 억압이 그만큼 없는 곳이라는 것을 상징한다.

게다가 바론이 '바론 스페셜'이라며 소개해주는 차의 맛. 그런 것은 자기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창조'를 말한다. 바론 스페셜이라... 비슷한 이름, 어디서 본 기억이 있다. (공교롭게도) 우라사와 나오키의 '20세기 소년'에서. 켄지가 후쿠베의 자식들(!?)에게 만들어주는 요리. 그 이름이 '켄지 라이스'였다지... :D 그건 그렇고, 말하자면 바론과 그의 친구들은 자신의 존재를 소중히 할 줄 알며 그것을 지켜 나가고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반면 고양이 왕국의 왕과 같은 경우를 생각해보면 풍요롭긴 하지만 '창조'와 같은 예술적인 것을 찾아볼 수 없다. 소비 지향적이고 개성이 없는 현대의 모습을 고양이 왕국에서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고양이 왕국에서 탈출하지 못하면 영영 고양이가 돼 버리는데 여기서 빠져 나가려면 "자신의 시간을 소중히 할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자기 자신의 존재미학에 관한 얘기 아닐까? 다른 어떠한 것들의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 자신이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고, 자신의 시간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

그리하여 결국에는 자기의 삶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것. 그것이 존재미학., 내가 추측하는 '고양이의 보은'의 주제다...

(2004. 2. 25.)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 미야자키 하야오

★★★★★ 2001년 일본 (2002 씨네큐브 광화문, 2004 DVD)

이 작품 얘기를 하려면 감독 얘기부터 해야할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일본 애니메이션(저패니메이션)의 살아있는 전설. 대작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비롯해서 '붉은 돼지', '이웃집 토토로', '모노노케 히메'같이 굉장한 작품들을 만들어 온 감독이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시절부터 그의 작품에 일관적인 주제가 있다면 바로 자연과 사람의 연결이라는 측면일 것이다. 자연을 정복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연과 연결되고, 그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 어려운 말을 쓰자면 생태주의 (또는 에코 페미니즘) 정도 되겠다.

언젠가 씨네21에서 이 사람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젊은 시절 굉장한 마르크스주의자였다고 한다. 물론 젊을 때 사상을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지는 않는다고 했다. (수 년, 수십 년이 지나도 자신의 사상에 발전이 없는 사람은 얼마나 비참한가?)

하지만 그는 젊은 시절의 생각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붉은 돼지를 보면 그의 젊은 날에 대해 부끄럽지 않게 추억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도 붉은 돼지는 자신의 젊은 시절 생각, 행적에 바치는 작품이라고 했으니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는 전작들보다는 좀더 자유롭게 '계급'에 대한 문제를 꺼내고 있다. 그것도 아주 세련되게. 이것이 정말 미야자키 하야오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보통 좌파 감독의 작품은 너무 '메시지' 전달에 노골적으로 집착한 나머지 작품의 생동감을 갉아먹는다. (이건 우리 나라 국방부에서 제작한 영화도 마찬가지겠지만 ^^) 그렇지만 미야자키 하야오는 좌파적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다만 자연, 사랑, 모험, 순수와 같은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고 계급 문제와 같은 것들은 뒤 쪽에서, 하지만 교묘하게 다루고 있다.

지금까지 얘기한 이러한 것들을 알고 있다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열 배는 더 재밌게 볼 수 있다. (앞으로는 줄여서 '센과...') 말하자면 이 작품은 단순히 상업성만을 위해 아이들이나 보라고 만든 작품이 아니라는 얘기다.

우선 '센과...'에 등장하는 유바바 같은 경우 그희는 전형적인 자본가 계급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온갖 관리를 하지만 실제로 자신이 일을 하지는 않지.

또한 치히로의 부모님은 자본주의의 화려한 모습에 빠져 마구마구 먹어대다가 (탐욕적인 모습을 상징) 결국 '돼지'로 변하고 마는 것으로 보인다.

유바바는 자신의 입지를 강화시키기 위해서 다른 이들을 부리는데, 이때 재밌는 건 '이름'을 빼앗아간다는 것이다. 치히로가 센이 되고, 하쿠도 자기 자신의 이름을 잊어버린다. 이름을 빼앗아 간다는 설정... 다른 만화에도 나온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 그 만화에서도 동독의 특수 킨더하임(유치학교)에서 아이들을 세뇌시킬 때 가장 먼저 이름을 빼앗아가는 것이 있었지.

그렇다면 자신의 이름이라는 건 왜 중요한 것인가? 대충 그 사람의 이름은 그 사람을 상징하는 가장 소중한 것, 바로 그 사람의 존재에 대한 설명이기 때문이다. (얘기하기 너무 길고 어려우니까 대충 이정도만 하자.)

어쨌거나 이러저러한 모험을 거쳐서 (그 과정 또한 정말 재밌다.) 센은 자신의 이름을 찾게 되고, 부모님을 구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그렇게 도와주던 하쿠의 원래 이름은 '코하쿠'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천이라는 뜻으로 보인다.)

코하쿠는 치히로가 어린 시절 빠진 적이 있던 하천이었다. 드디어 치히로는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된다. 코하쿠(자연)는 유바바(자본가)에게 포획되어 자신의 이름을 잃고 치히로(사람)과의 관계를 끊어버렸던 것이다. 그것을 치히로(사람)가 다시 연결을 회복시키고 유바바(자본가)를 극복하게 되는 것이 바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주제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이 작품에는 '가오나시'라는 재밌는 캐릭터도 등장한다. 이 캐릭터에 대해서도 할 말은 많으나 너무 스포일러가 되면 안 된다는 원칙에 입각해서^^ (이미 중요한 얘기는 다 썼지만 +_+) 직접 보고 판단하시길...

(2004. 2. 18.)

제멋대로 함선 디오티마 - 권교정

★★★★★ 1999년 - 2000년 (단행본 기준) 한국

"'왜?'라는 의문. '알고 싶다'라는 생각. 나를 뒤흔드는 궁금증들. 그렇지만 내가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결코 알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많아."

순정만화 같지 않은 순정만화랄까? 권교정의 만화가 그렇다.

2000년 이후 현탁(卓) 형이 나에게 미친 영향은 무척 크나, 그 가운데 특히 만화(그림책)에 대한 것은 가히 절대적이었다. 권교정이라는 작가도 현탁이 형의 소개로 알게 되었다.

이 작품은 2권까지 나오다가 지금은 연재 중단된 상태다. 한국 만화 시장이 워낙 안 좋다보니 연재하던 잡지가 폐간되고 단행본으로 내도 스캔 만화나 대여점 때문에 돈도 안 되고... 그래서 권교정 같은 만화가가 설 자리가 없어서 무척 아쉽다.

(사실 이 만화는 지금 절판돼서 구할래야 구할 수도 없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나머 준' 함장은 2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우주정거장 '디오티마'의 역장으로 취임하게 된다. (무척 파격적인 인사!) 사실 나머 준이라는 사람은 죽음을 맞이해도 끊임없이 과거의 기억과 함께 새로 태어나는 사람으로 보인다.

이 사람의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 그리스 시절 '디오티마'라는 처녀로 올라간다. 자신의 지식을 후손들에게 물려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아리스타르코스와는 달리 디오티마는 거기에 만족을 못 한다.

"나는 살아 있다. 나는 느끼고, 생각하고, 끊임없이 뭔가를 배우고, 익히고, 그리고 나는... 나는...! 언제나 좀더 좀더! 더 많은 것들이 알고 싶어져 버린다."

지식에 대한, 궁극적인 지혜에 대한 열망. 왜 그런 것에 욕심을 내는 것일까? 알 수가 없다.

어려운 얘기 같지만 이 만화는 절대 어렵지 않다. 내가 지은 'Silly Window Syndrome' (1절^^) 가사처럼...

샐리는 이폴리드에게 말했어 나를 지구로 데려다 주세요. 너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했는데 만약 그런 거라면 네 보물도 될 수 없는 거잖아. 만일 그런 걸 알고 있었다면 난 오히려 부담이 되었을 텐데.

이런 로맨스도 나온다 ^^ 권교정 특유의 개그도 작품 전반에 끊임없이 흐르고. 덧붙여 이런 대사도 ^^

"눈물이 - 무서운 기세로 떨어져 내렸다. 소리없이 퍼붓는 소나기처럼 그렇게 무섭게" - 샐리를 만난 이폴리드의 행동...

(2004. 2. 16.)

살인의 추억 - 봉준호

★★★★☆ 2003년 한국 (2003 메가라인 김포)

"아... 씨바 진짜 모르겠다"

김포에 제대로 된 극장(메가라인 김포)이 새로 생겼다는 얘길 듣고 2003년 봄에 어머니, 어머니 친구랑 같이 본 영화다. (원래는 아버지가 같이 가기로 했으나 게으르게 잠만 퍼 주무시는(말버릇 보게나^^) 바람에 +_+)

작년에 워낙 유명했던 영화라 이미 본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이 영화는 1980년대 유명했던 '화성 연쇄 살인사건'을 다룬 영화다. 감독이 봉준호 감독인데, 이 사람 (나처럼^^) 민주노동당 당원이다. 사실 영화 내용에 감독의 사상이 그다지 투영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좌파의 시각을 갖고 세상을 본다면 세상은 또 다르게 보일 수 있는 것 아닐까?

김상경(서태윤 역)과 송강호(박두만 역)가 주연으로 열연했다. 이때까지 김상경이라는 배우를 잘 몰랐는데 이 영화만 봐선 정말 앞으로 기대되는 배우 같았다. 송강호는 말할 것도 없지. (이 영화 이후 내 인생 최고의 배우 자리를 굳혔달까...)

이 영화의 핵심은 살인자가 누구냐? 하는 단순한 질문보다도 살인사건 하나 해결하지 못한 80년대 모습을 이제 와서 가만히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살인자가 누군지는 감독도 정해놓지 않았다고 한다.)

살인사건이 날 상황이라 바로 경찰력을 투입해야 하는데도 시민을 지켜야 할 경찰이 시민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몽땅 출동해버리는 바람에 동원할 경찰이 없는 현실. 그것이 불과 15년 전 우리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 외에 사방이 논인 곳 한 가운데에 괴물같이 거대한 공장 하나가 달랑 들어선 모습이라든지 범인으로 의심받는 사람이 공장으로 숨어들어간 운동권 학생의 이미지라든지 하는 것은 꽤 여러 가지 것들을 생각하게 해 준다.

영화의 절정은 마지막 부분... 정액 검사를 통해 범인 식별을 시도했으나 좌절하는 부분에서 터뜨리는 김상경과 송강호의 분노일 것이다.

특히 현탁이 형이 추천한 대사~ ^^ 박두만이 용의자를 거칠게 추궁하며 "야... 이 새꺄... 내 눈 똑바로 쳐다봐... (정적) ...... 아... 씨바 진짜 모르겠다. (정적) 밥은 먹고 다니냐?" 이 연속 콤보는 한국 영화 최고의 대사 콤보 같다. :D

(2004. 2. 16.)

마리포사 - 호세 루이 꾸에르다

★★★★★ 1999년 스페인 (2001 하이퍼텍 나다, 2003 비디오)

"몬쵸, 지옥은 따로 있는 게 아니란다. 바로 사람의 마음 속에 있단다"

2001년 가을, 지금 다니는 회사(어울림정보기술)에 갓 입사한 나는 네트워크나 보안 같은 걸 하나도 몰랐다. (넷맹...?) C 프로그래밍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막상 회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내가 울 회사에 들어올 수 있었을까? >.<

그건 그렇고, 어쨌거나 10월 3일 (개천절) 휴일을 즐기며 동대문에 옷을 사러 나갔다. 옷을 사고 보니 왠지 아쉬운 시간... 그때는 내 하숙집에 놀이 기구 같은 게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여가 시간에는 게임방에 가거나, 책을 보거나 하는 게 다였다. (무척 심심했다 ㅡ.ㅜ)

그 때문에 집에 들어가기 싫어진(!) 나는 하이퍼텍 나다에 영화나 보러 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 친구 삽씨...(이런 놈이 있다.)를 불러 같이 영화 보러 가자고 꼬셨다. 하지만 그날도 출근해서 열심히 일하고 있던 삽씨. 결국 못 나와버리고 나 혼자 하이퍼텍 나다로 향했다.

포스터는 위에서 보다시피 그리 맘에 들지 않았다. (나 역시 뽀송뽀송한 게 좋단 말이야~ ㅠ.ㅠ) 내용을 하나도 모르고 들어갔기 때문에 그냥 애 하나 자라는 영화로 생각했는데 의외로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엔딩 크레딧이 울릴 때 내 가슴 속에 맺히는 강한 여운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뭐... 따지고 보면 사실 내용은 애 하나 자라는 영화 맞다. ^^ 공교롭게도 지금까지 소개한 영화 세 편이 모두 성장영화인데, 2000년 겨울 이후 이것저것 새로운 환경을 마구마구 접해버린 나로선 성장영화를 선호했던 면이 있는 것 같다. (후후후... 커가는 내모습 *>.<*)

이 영화의 배경은 1930년대 스페인 내전 직전. 학교에 갓입학한 몬쵸는 꽤 소심한 아이었다. 하지만 그레고리오 선생님의 친절한 지도 덕택에 조금씩 학교 공부에 재미를 붙이게 된다.

또다른 주인공인 그레고리오 선생님. 그는 자유주의 교육사상과 사회주의적 시각을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 애들이 떠들어도 절대 손찌검을 하지 않고 아이들이 조용해질 때까지 화를 참고 기다리기도 한다. (우리 자랄 때도 그런 분들 꼭 계셨지... 와아... 그 선생님들한테 정말로 진짜 고맙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그레고리오 선생님은 오랫동안 봉건 잔재에 시달려왔던 스페인에 한 세대라도 자유를 풍미하는 세대를 심어줄 수 있다면 그 누구라도 '자유'에 관한 꽃을 꺾을 수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어느 날, 몬쵸는 선생님에게 묻는다. 교회에서는 무언가 잘못 하면 지옥에서 굉장히 고통을 받는다고 하는데 그 사실이 너무 무섭다고. 그러자 그레고리오 선생님은 이렇게 대답한다. 사실 지옥은 없는 것이고, 사람의 마음 속에서 지옥이 생겨나는 거라고...

그리고 선생님의 예언(사실 예언도 아니지~)은 영화 마지막에 무슨 뜻인지 알게 된다. (이것도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비워두자.)

자유, 사랑, 평등, 행복... 훌륭한 단어들이 정말 많은데 왜 사람들은 구속, 증오같은 단어들을 따르고 있을까...?

하지만 "살아가자" (나우시카에서 나오는 말처럼)

인류에게... 어느 한 세대라도 자유와 사랑에 대한 것들을 심어줄 수 있다면 그 누구도 그 꽃을 꺾을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불끈!~

아참! 마리포사가 무슨 뜻이냐고? (아마 스페인어겠지?) 영어로 이 영화 제목이 'Butterfly's Tongue'이다. 영화 중간에도 거기에 대한 설명이 나오긴 하는데 알아 들을 수가 있어야지... >.< 어쨌거나 나비의 (입에 해당하는) 대롱을 마리포사라고 하나보다.

덤으로... 영화 중반에 정말 멋진 로맨스도 나온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정말이지...

(2004. 2. 16.)

키즈 리턴 - 기타노 다케시

★★★★☆ 1996년 일본 (2000 하이퍼텍 나다, 2002 DVD)

"형... 우리 이제 끝난 걸까...?" "바보, 아직 시작도 안 했잖아~"

이 영화는 내가 '하이퍼텍 나다'라는 극장에서 처음 본 영화다. 왜냐 하면, 이 영화를 하던 극장이 서울에서 오직 하이퍼텍 나다 한 군데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

그 이후로 겨울에 아르바이트 하면서 붉은 돼지 보려고 수헌이와 함께 회원가입을 했던 게 이어져 지금 4년째 회원 유지를 하고 있다.

주인공인 신지와 마짱은 (고등학교로 보이는) 학교의 소문난 반항아들이었다. 수업 빠진 채 선생들 놀려주고, 다른 애들 삥뜯고, 괜히 술집가서 '가오'잡고 하는 게 전부였다.

그러던 이들... 신지는 다니던 체육관에서 소질을 인정받아 복싱 선수로, 마짱은 야쿠자 조직의 행동대장으로 변신! 하게 된다. 하지만 인생이 그렇게 쉬울 리가 없지...

신지는 복싱 선배의 꼬임에 빠져 체중조절에 실패한 끝에 상대 선수에게 패해버리고, 마짱은 다른 행동대장의 잔인한 복수에 의해 크게 다친 채 조직에서 축출된다. (심지어는 이들의 친구로 보이는 소심한 소년마저도 세일즈맨, 택시운전사 모두 실패해버린다...)

시간은 흘러흘러 어느덧 얼굴엔 수염이 가득... 회한이 가득한 모습으로 훌쩍 커버린 이들.

모든 것은 절망스러울 수밖에 없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이들은 얘기한다.

신지: "형... 우리 이제 끝난 걸까...?"
마짱: "바보, 아직 시작도 안 했잖아~"

나도, 이글을 읽는 사람도.

(2004. 2. 16.)

400번의 구타 - 프랑소와 트뤼포

★★★★☆ 1959년 프랑스 (2001 하이퍼텍 나다, 2004 DVD)

"영화를 사랑하는 것은 같은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이다."

2001년 늦은 가을이었을 거다. 내 친구 수헌이가 병역 특례로 일할 회사 면접을 치르러 서울에 왔었다. 신천에서 만나 저녁을 먹은 우리는 왠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을 보아하니 아직 여덟시도 안 되었으니까. 마침 '프랑소와 트뤼포 영화제'라는 걸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 둘은 (수헌이로선 오랜만에) 하이퍼텍 나다에 가서 영화를 보기로 하였다.

그날 하이퍼텍 나다 마지막회 영화는 '400번의 구타'였다. 흑백 영화라서 오히려 신선하기도 했고, 왠지 모르게 진지한 다른 관객들도 있었고... 난 무척 그 영화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 해 '아멜리에'와 '마리포사'라는 굉장한 작품을 본 것은 단지 2001년 겨울 충격^^의 서막에 불과했던 것 같다. (프랑소와 트뤼포의 영화는 정말 다 좋았다... 네 편밖에 못 봤지만... >.< 정확히 말하자면 좋은 정도가 아니라 최고!)

400번의 구타는 감독의 어린 시절을 앙뜨완느 드와넬이라는 주인공을 통해 그린 영화이다. 무척 어렸을 때는 아예 할머니 밑에서 자라다가 초등학교 갈 즈음이 되어, 철없어 보이는 어머니와 양아버지 사이에서 자라게 된 주인공. 수업 시간에 딴 짓 하기, 학교 빼먹고 도망다니기, 어머니가 죽었다고 뻥치기와 같은 신공을 구사하던 주인공은 결국 '400번의 구타'를 당하게 된다. (정말 400번을 맞는 장면은 안 나온다. 폭행 장면(?)은 단지 한 번 나온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 맛보게 되는 소중한 자유... 너무 얘기를 많이 하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직접 보길 권한다. (그런데 비디오로 나왔을라나?)

내용도 내용이지만 쎄느강 좌안에서 바라보는 파리가 계속해서 나오고 여러 가지 프랑스적인 것들을 구경할 수 있어서 더욱 재밌었다.

교훈?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중에 애들은 막 키우자!' ^^. 혹시 누가 아는가? 우리 나라에도 프랑소와 트뤼포 같은 대감독이 나올 수 있을지 ^^ (이미 좋은 감독들이 많긴 하지만)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한 사실. "영화를 사랑하는 것은 같은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이다." / 프랑소와 트뤼포

(2004.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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