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나이야기] 이젠 침묵하지 않겠다 노암 촘스키는 미국 매사추세츠대학의 언어학자다. 그는 '생성문법'을 비롯해 언어학계에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그는 뛰어난 언어학 연구자에 그치지만은 않았다. 자신의 전공과는 무관한 미국 사회의 병폐에 치열하게 맞섰고,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알리려는 노력을 지금도 꾸준히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 사실 이런 행동은 말은 쉽지만 실천하긴 정말 어렵다. 우리는 대개의 분야에서 머리를 긁적이는 '비전문가'이고, 그쪽 '전문가' 집단이 "당신이 뭘 아느냐?"고 따지고 들면 금방 움츠러들기 일쑤다. 나는 공대생이다. 학교가 단과대학이다보니 주위엔 온통 공학 전공자들뿐이다. 흔히 대학 사회에선 공대생을 '공돌이'라고 부른다. 전문분야에만 빠진 단순 무식쟁이란 폄하를 담은 말이다. 맞는 말이기도 하다. 자연과학이란 만만치 않게 넓은 세계를 헤매면서 정작 내가 사는 사회는 잊고 있는 친구들도 흔하니까. 나는 공과대학에 들어왔지만 '침묵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신문사에 지원했고, 내가 그렇게 행동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아니었다. 우리 학교 직원들의 노동조합은 97년 처음 생겼을 때 200여명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학교쪽의 인사 불이익 조처와 개별적 탈퇴 강요로 현재는 조합원 수가 70여명으로 줄어든 상태다. 학교쪽은 지난해 임금을 묶으면서 단체협약을 통해 올해 임금 인상과 처우 개선을 약속했다. 그러나 학교쪽은 일방적으로 협약을 무시해버렸다. 이젠 곧 연봉제와 신인사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하니 노조에 대해 부당한 압력이 몰아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나는 나름대로 가까운 곳에서 이런 모습들을 지켜봤다. 그런데도 내가 만드는 신문은 이 사실에 대해선 침묵했다. 협상결렬 사태를 취재해 기획기사로 싣겠다는 내 주장이 신문사 주간교수의 반대에 부닥쳐 허공으로 날아가버린 것이다. 나는 주간교수한테 "학교쪽이 약속을 안 지켰다"며 "노동조합이 탄압받고 있다"고 말했다. 주간교수는 교직원 노조 문제의 집중 취재가 대학신문 기사로 적절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또 학교쪽이 취재에 잘 응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노조 목소리만 싣게 될 텐데, 그럴 경우 편중성 때문에 기사 질이 떨어질 거라고도 했다. 나는 멍청하게도 이에 맞설 논리를 펴지 못했다. 또 더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주간교수를 설득하려는 의지도 부족했다. 편집국은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로 흘렀고, 협상결렬 사태는 결국 9월17일치 신문에서 달랑 작은 기사 하나로 처리되고 말았다. 이번에 새로 나올 신문을 밤새 조판하다 문득 밝아오는 아침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다음엔 정말 침묵하지 않겠다고, '공돌이'의 주제넘은 참견을 시작하겠다고. 나는 '말할 수 있는', '말해야만 하는' 이유를 갖고 있으니까. "우리가 전공하는 분야가 아닌 곳이라도 약간만 관심을 둔다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결코 없다." 내가 기억하는 노암 촘스키의 충고다. 1999.10.3 -한겨레- 문이중선 포항공과대학교 전자전기공학과 2년 포항공대신문사 기획부장 (한겨레 사이트에서 이 글을 도저히 찾을 길 없어 텍스트 파일을 따로 올립니다. 원글에 비해 수정된 것은 한겨레 여론매체부에서 손댄 것입니다.)